눈 똑바로 뜨고 보지 않으면,
<“수십년 뒤 한국을 알고 싶으면 일본을 보라는 말이 재정중독증에서도 딱 들어맞게 생겼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이 1980년 일본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추세전망도 비슷하다. 게다가 정치권 중심으로 재정지원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본식 재정 ‘데드엔드(막다른 길)’를 쫓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9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80년 일본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48.81%였다. 지난해 국내 해당 지표는 48.41%였다. 40년 전 일본과 대한민국 정부부채가 같은 비율을 보인 것이다. 이후 증가 추이도 비슷하게 전개된다. 5년 뒤인 1985년 일본은 69.68%를 기록했고, 2025년 우리나라는 64.9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증가세가 시작된 이후 일본 일반정부 부채는 매우 가파르게 늘어났다.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1996년 100%, 2009년 200%를 넘겼고, IMF는 2025년 263.9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45년만에 5배가 넘게 급증한 것이다.
일본도 이를 조절하려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이미 급증세를 탄 재정적자를 막을 수 없었다. 긴축재정 정책을 펼치기만 하면 나타나는 경기침체를 정부와 정권 입장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1990년대 들어 나라빚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일본은 1996년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해 세입을 늘렸다. 증세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개선에 머물렀다. 긴축정책 실시되자 경기가 냉각됐고 1998년 일본 조세수입은 1996년보다 후퇴했다. 2001년엔 국채 발행액을 연 30조엔 이하로 조절하겠다고 발표했지만, 1년 만에 포기했다.
복지지출을 중심으로 늘어난 세출이 문제로 지적된다. 일본 연금제도는 버블붕괴 전에 기획됐다.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짠 모델이 아니었다. 여기에 급격한 고령화사회 진입이 겹쳤다. 정부 예산이 복지지출을 막기위해 매년 들어가기 시작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일본은 노령화가 시작됐고, 복지혜택 세출은 늘어났는데 세입은 늘지 못했다”며 “지출증가와 수입증가가 따라오면 괜찮은데 재정건전성 때문에 긴축재정을 하면 세입이 늘 수가 없는 아이러니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금은 이미 약속했고, 줄일 수가 없었다”며 “여기에 모든 부를 고도성장기를 겪은 노인이 들고 있으면서 경제가 정체됐다”고 덧붙였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고령화는 이미 시작됐다. 2020년 합계 출산율은 0.9명 미만, 연간 출생아수는 27만 명대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정지원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기본소득, 보편·선별 재난지원, 손실보상법 등 각종 지원책을 합치면 최대 180조원 가량이 소요될 수 있다. 지난해 명목 GDP가 1919조원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GDP 대비 9%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정부 부채가 급증하면 국채 이자로 나가는 고정비용이 급증해 결국 정부가 경제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다고 지적했다. 세수는 복지지출, 나라빚 이자를 막는데 급급하게 사용되고 미래먹거리 사업 등 거시적 미래 경제방향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홍 교수는 “지난해 나라빚 이자가 20조원을 기록했는데, 국세는 290조원이다”며 “국채 발행이 계속되면 이자율도 오를텐데, 그러면 재정당국이나 정부가 경제정책을 펼칠 수 있는 ‘미래의 룸’이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도 앞서 “미래 세대의 부담인 국가 채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악어 입 그래프’ 의미를 다시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헤럴드경제, 홍태화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3년여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 규모가 총 95조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예타 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마련된 것으로 문 정부의 면제 사업 규모는 역대 최고다. 여기에 더해 10조원 이상의 사업비가 예상되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그 규모는 1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여당은 이를 국가 균형 발전과 각 지역 숙원사업의 속도감 있는 진행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야권에선 과거 더불어민주당이 토건 행정이라고 꼬집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문 정부가 ‘면제 카드’를 남발하며 국가재정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9일 헤럴드경제가 기획재정부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등을 통해 입수한 ‘예타 면제 현황’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2020년 12월 기준 문 정부 들어 모두 113개 사업의 예타가 면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는 95조4281억원이다.
예타제도는 대규모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기획재정부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 중립적 기준에 따라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로 예산 낭비와 사업 부실화를 방지하고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총사업비 규모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이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이 대상이다.
다만 국가재정법에 따라 공공청사와 교정·교육시설 신·증축, 문화재 복원, 지역균형발전 혹은 긴급한 경제 대응 등 이유가 있으면 면제 가능하다. 예타는 이에 ‘암초’ 또는 ‘안전 핀’이라는 상반된 평을 받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90개 사업의 예타를 생략했다. 규모는 61조1378억원이다. 박근혜 정부는 94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생략했고, 그 규모는 24조9994억원으로 계산됐다. 이·박 정부에서 이뤄진 예타 면제 규모의 합은 86조1372억원이다.
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규모는 2017년 16조5519억원(5건), 2018년 12조8797억원(30건), , 2019년 35조9750억원(47건), 2020년 30조215억원(31건)으로 확인됐다. 문 정부의 2017~2019년 예타 면제 규모는 65조4066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전 전(前) 정부의 면제 규모를 앞지른 것이다.
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규모 100조원 달성은 초읽기다. 민주당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하고 2월 임시국회 처리를 공약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앞서 예타가 면제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는 가덕도신공항을 짓는 데만 10조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권은 정부가 ‘적극행정’에 나서다보니 예타 면제 사업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야권에선 문 정부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 입각해 예타 면제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이·박 정부를 토건 정치라고 몰아가던 현 정부가 이들보다 더한 일을 벌이는 격”이라고 했다.>헤럴드경제, 이원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