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찰에게 수사를 다 맡기겠다니
<'단순 변사 vs. 인지 수사' 경찰 수사방법 논란
경찰이 서울 반포한강공원 손정민씨 사망 사건에 대해 한 달이 넘도록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가운데 사회적 관심이 큰 사망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수사 방법론이 논란이다. 검찰을 포함한 법조계에선 “근거 없는 의혹 제기도 문제지만, 초반부터 단순 변사로 규정한 채 범죄 가능성엔 무게를 두지 않는 경찰의 태도가 세간의 억측을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게 경찰이 손정민씨 사망 사건을 단순 변사사건으로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로 추정되기 때문에 한강에 입수한 경위에 대해서만 수사할 뿐 그사이 범죄 가능성에 대해선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27일 “현재까지 수사한 상황을 볼 때 손씨의 사망이 범죄와 관련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거꾸로 “애초 범죄 정황을 발견하기 위한 인지사건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던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개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는데, 석연찮은 정황이나 의혹이 있을 땐 범죄 혐의점을 찾기 위한 인지 수사에 착수한다. 인지에 따른 사건번호가 붙어야 법원의 영장 발부에 따라 강제수사도 가능하다.
“강제수사 필요” vs “임의수사 원칙”
한 현직 검사는 “변사사건에서 자살 동기가 없고 타살 의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 일반 형사사건으로 인지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수사한다”며 “살인·상해치사·과실치사·유기치사 등의 죄명을 설정해 피의자를 성명불상자로 특정하고 제3자가 사망에 관여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해야 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법조계 인사도 “손씨의 머리와 얼굴에 상처가 있는 등 자살 이외의 사망 가능성이 있는 만큼 친구 A씨를 포함한 주변인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선행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수사 절차가 자칫 A씨에 대한 유죄 여론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소극적인 수사는 진실을 찾는 건 물론, 억울함을 호소하는 A씨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다.
경찰은 지난 27일 “형사소송 절차상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을 강제수사할 수단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유·무죄를 떠나 참고인에 대해서도 청구·발부할 수 있다.
경찰이 A씨를 제외한 A씨 가족의 휴대전화와 태블릿PC 등을 임의제출 받아 포렌식하고, A씨의 집과 A씨 어머니의 자동차 등은 사전 동의를 받아 수색한 데 대해서도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A씨 어머니(지난 7일)·아버지(지난 10일)·누나(지난 16일)의 휴대전화를 각각 시차를 두고 확보한 데다, 자택 등을 사전 동의 아래 수색하는 건 형사소송법상 근거가 없는 수사 방법이어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색이라는 건 불시에 가서 영장을 제시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인데 수색 대상자의 동의를 얻는 협의를 거치면 수색의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경찰은 이 같은 지적을 일축했다. 앞뒤가 바뀌었다는 이유다. 서울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이 있어야 인지사건으로 전환하는 것이지, 지금은 변사사건 자체에서 사건인지 사고인지를 살펴보는 중”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지만, 아직 혐의점이라고 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형사소송법상으로도 임의 수사가 원칙이고, 그게 안 될 경우 강제수사를 하는 것”이라며 “사체에서 타살이라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기 때문에 피의자라는 개념이 만들어질 수 없는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일선 지검의 한 검사는 “무혐의도 결국 적극적인 수사로 밝히는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잠든 친구 방치하고 혼자 귀가한 게 죄가 될까
타살 혐의점이 없어도 술에 취해 노상에서 잠든 친구를 그대로 방치하고 귀가했거나, 친구가 한강에 입수한 사실을 알고도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면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두고 온 죄’를 처벌한 과거 판례도 더러 있다.
대법원은 1972년 술에 취해 지서(支署) 나무의자로 운반된 사람이 숨을 가쁘게 내쉬고 신음하는데도 3시간 동안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관에 대해 유기죄를, 2011년 한 식당에서 나흘에 걸쳐 술을 마시고 얇은 옷차림을 한 채 잠이 든 손님을 방치해 저체온증으로 사망케 한 식당 주인에 대해 유기치사죄를 인정했다. 1992년에는 익사 위험이 있는 저수지 제방으로 조카들을 데려간 삼촌이 물에 빠진 조카를 구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작위에 따른 살인죄를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나쁜 짓은 될 수 있지만, 형법상 죄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따른 추측이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한국 법으로는 ‘두고 온 죄’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기죄가 성립하려면 부모나 경찰관, 식당 주인 등 피해자에 대한 법률상·계약상 보호 의무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친구는 그런 관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1976년 서울고등법원은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던 중 동시에 실족했는데도 동행자에 대한 구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내버려 둔 채 현장을 뜬 사람에 대해 유기치사죄를 인정했지만, 이듬해 대법원은 “밑도 끝도 없이 일정한 거리를 동행한 사실만으로 법률상·계약상 보호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형법 전문가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함께 술을 마신 친구에 대해 보호 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석하더라도 손씨가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걸 인지할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면 모르지만, A씨도 만취해서 블랙아웃 상태였다고 주장한다”며 “아직 A씨에게 손씨를 구조할 능력이 있었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썬 유기 혐의를 적용하는 건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하준호·최연수 기자
출처 : "정민씨 사건, 초반부터 변사로만" 경찰 수사 꼬집은 법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