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00만원 아끼려고?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정비사업지 건물 붕괴 사고는 왜 일어난 것일까.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건설업계에서는 건축물 철거 방식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것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건축물을 고층에서부터 눌러서 부수는 압쇄·파쇄 공법을 활용했지만, 해체계획서에 쓴 것처럼 철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철거 현장에선 어떤 원칙이 지켜져야 했던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어떤 공법으로 철거가 됐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형준 기술사업평가사는 “건축물의 높이(층수)와 층고, 평면형상과 구조, 건축물과 인접 건축물과의 거리, 입지 여건, 해체 공법에 따른 비산각도와 낙하반경 등을 고려해 공법을 선정하게 된다”고 했다.
◇ 건물은 ①기계식 ②압·파쇄 ③탑다운 방식으로 해제됐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철거업체 한솔기업이 광주 동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에는 ‘건축물 측벽에서부터 철거작업 진행’, ‘파쇄기가 닿을 수 있는 높이로 잔재물을 깔아놓고 장비가 올라탐’, ‘잔재물 위로 이동 후 5층에서부터 외부벽, 방벽, 바닥 순서로 해체’, ‘3층까지 해체 완료 후 지상으로 장비 이동 후 1~2층 해체작업 진행’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기계식 공법에, 압쇄·파쇄 공법, 그리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탑다운(Top_Down) 방식이다.
계획서에 적시된 방식엔 큰 문제가 없었다. 혼잡한 도심 내 대부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공법이다. 건축물을 철거(해체)하는 공법은 크게 두 가지, ▲중장비를 이용한 ‘기계식 공법’과 ▲폭약(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하는 ‘발파공법’으로 나뉜다. 도심 내에서는 폭약 사용이 어렵다보니 대부분 기계식 공법을 쓴다.
기계식 공법 중에서도 압쇄·파쇄 공법이 활용됐다. 집게 모양의 유압기로 하나씩 쪼아 눌러 부수는 방식이다. 그 밖에는 건축물의 주요 연결부를 끊은 뒤 건물을 넘어뜨리는 전도공법, 두부 모를 자르듯 건물을 하나씩 잘라낸 뒤 들어서 내려놓는 절단공법(커팅) 등이 있다.
절단공법은 콘크리트 절단기, 다이아몬드 와이어쏘(wire saw·절단톱) 등으로 구조물을 잘라내는 방식인데, 건축물의 구조물을 잘라낸 뒤 크레인으로 절단부재를 인양해 지상에서 압쇄해 건축물을 해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붙어 있는 건축물 중 한 건물만 해체할 경우, 교량 보수나 해체 작업 등에 쓰는 특수 공법이다. 분진과 소음, 진동을 일으키는 전도공법이나 발파공법보다야 친환경적인 공법이지만, 비용이 비싼데다 일반적인 건축물 철거 현장에서 적용되는 공법은 아니다.
건물 층수에 따라 동원되는 장비도 다르다. 6층 또는 18m 이하의 건축물을 철거할 때는 굴삭기만으로 해체할 수 있는 반면, 7층 또는 18m 이상 건물의 경우, 굴삭기와 크레인 등 대형 장비들을 사용해 작업해야 한다. 3층(10m)짜리 건축물의 경우 지상에서 굴삭기로 철거하면 된다. 4층~6층(10~18m)의 경우 지상에서 토산(성토체)를 조성해 성토체 위에서 굴삭기로 건물을 해체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7층 또는 18m 이상 건물은 지상에서 고층부는 붐 길이가 더 긴 롱붐·암(Long Boom·Arm)을 쓰고, 저층부는 굴삭기를 이용한다. 고층부는 철거장비를 크레인으로 올려(양중) 상층부를 한개층씩 해체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철거 현장의 약 90% 이상이 굴착기 등을 이용해 건물의 윗층에서부터 해체해 내려오는 방식을 적용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철거 계획사 상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2~3층씩 부시고, 폐기물 쌓아놓은 상태서 보강장치 부실했을 가능성”
문제는 계획서와는 다르게 철거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철거(해체)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것이란 의혹이다.
우선은 ‘한 층씩 철거하는 게 원칙인데 철거 기간을 줄이기 위해 2~3층씩 철거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폐기물을 반출하지 않고 쌓아뒀을 가능성도 있다. 폐기물이 제때 반출되지 않으면 철거 건물에 반하는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또 하중이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무게 중심점에 설치해야 하는 보강장치(잭 서포트·Jack Support)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을 가능성' 등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세운 계획과 원칙에 따라 장비를 올려 5층에서부터 한층씩 내려오면서 해체 작업을 해야하는데, 현장에서 이렇게 하면 기간이 더 걸리니까 2~3층씩 철거를 진행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는 “2차적으로 폐기물 적체도 문제”라면서 “원칙상 한 개층씩 해체할 때마다 나오는 폐기물을 빼낸 뒤 다시 철거 작업이 진행돼야하는데 이렇게 하면 또 시간이 더 걸리니까 폐기물을 적체해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건물 내 가로·세로 2m 이상 개구부를 만들어 건물 밖으로 반출해야 한다. 또 내부에 폐기물이 쌓여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폐기물의 적층 높이는 30㎝ 이하여야 한다. 이어 그는 “보강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쌓인 폐기물이 하중을 키워 노후화한 건축물이 못 버티고 붕괴해버린 것일 수 있다”면서 “이 중에서 어느 하나만 잘못하는 경우는 없고, 통상은 세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동반된다”고 했다.
◇ “17명의 사상자와 맞바꾼 공사비 절감액은 하루 400만원″
위험한 철거현장에서 원칙을 깨는 이유는 결국 비용 때문이다. 계획대로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건물을 한꺼번에 무너트리면 철거 기간을 확 줄일 수 있다. 철거를 할 때 하루 비용은 대략 400만원이다. 포크레인 등 양중 장비 비용이 하루 100만원에 장비기사, 안전관리사, 신호수, 물 뿌리는 사람 등 최소 인력 5명의 일당도 들어간다.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감안한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아랫층 무게 중심 축 일부를 해체해서 건물 전체를 넘겨버리는 방법으로는 한번에 철거가 가능하니까 철거 기간도 2주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본다”면서 “비용 차이가 있으니까 재개발 현장에서도 이 같은 해체 작업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저가입찰 구조와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철거 관련 법·제도가 강화했지만, 현장에서 인식이 안전보다 비용과 효율성에 방점이 찍혀있다 보니 짧은 기간 안에 공사를 진행하려다 사고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축물관리법이 생긴 후 철거작업은 이미 많이 까다로워진 상황이지만 저가 수주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정작 현장에서는 신호수 등 안전 인력도 제대로 배치를 못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상주 감리자를 둔다고 해도 감리자가 실질적으로 감리감독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장 경험이 많은 철거 베테랑이 위험 가능성 등을 더 잘 판단한다”면서 “실질적인 관리 감독은 지자체에서 해야 하는데, 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보니 행정절차를 강화해도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작년 5월부터 시행된 건축물관리법에 따라 4층 이상 건물 등은 관할 자치단체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필요한 경우 자치단체가 현장점검을 할 수 있고 감리자를 지정해 작업 순서 준수, 안전관리대책 이행 등 감리를 해야한다. 이를 어기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조선비즈, 허지윤 기자.
출처 : 짓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철거인데… “하루 400만원 아끼려고 절차 어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