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저도 못 달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마루/時雨 2021. 8. 19. 09:24

 

 

<"광복절인데 태극기를 거는 게 아파트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구요?"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민모씨(53)는 지난 광복절 자신의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 '태극기를 게양하자'고 독려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입대의 측에서 "광화문 집회를 연상시킬 수 있어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민씨는 "결국 광복절 당일에도 우리 집 말고는 아무도 태극기를 안 걸었다"며 "어쩌다가 태극기가 애물단지가 됐나 싶어 씁쓸하다"고 했다.

 

국경일이 돌아오면 아파트 외벽을 장식하던 태극기가 사라진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광복절에도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서 태극기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민단체들이 무료 태극기 배부 운동까지 전개하고 나섰다. 제조업체들은 코로나19로 태극기가 사용되는 행사도 줄어든데다 일부 극우단체의 '광화문 집회'로 인식이 악화돼 판매량이 줄었다고 호소한다.

 

 

"귀찮은데 왜 걸어요"…창고 속 먼지 쌓여가는 태극기

 

18일 서울·경기권의 5개 아파트 단지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 "태극기를 게양한 세대가 10%도 되지 않는다"며 입을 모았다. 이들 아파트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국경일이 와도 태극기를 거는 가구가 크게 줄었다. 몇 년 전 입대의·아파트부녀회 등 입주자 단체가 국경일이 되면 태극기를 배부하거나 게양 방법 공고문을 승강기 안에 써붙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경기 성남시의 한 아파트 입대의 관계자는 "불과 5년 전에는 입주민들이 걷은 돈으로 태극기를 사 단지 입구에서 나눠주는 행사도 열었다"며 "최근 입주민들 사이에서 '걸지도 않는데 돈 낭비'라는 의견이 있어 구매가 중단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게양을 찬성하는 사람보다는 반대하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다"고 덧붙였다.

 

태극기 게양을 꺼리는 시민들이 늘어난 데에는 최근 불거진 태극기와 관련한 부정적인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광복절 코로나19 2차 대유행의 도화선으로 지목된 시민단체의 대규모 집회 당시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앞장섰던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극우 성향의 정당이 태극기를 내세워 당원 모집에 나섰던 것 등도 한몫했다.

 

인식이 악화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는 태극기 게양이 '귀찮은 행사'가 됐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전형준씨(28)는 "축구 국가대표 경기 응원이라면 몰라도 쉬는 날에 굳이 창고에서 태극기를 꺼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태극기를 건다고 누가 애국자라고 상 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낮은 선호도에 코로나19로 태극기가 필요한 대규모 행사도 사라지면서 태극기 업계도 울상이다. 경기도 광주시의 한 태극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근 2년은 다른 해와 비교해 판매가 50%이상 급감했다"며 "학교나 아파트단지 등에 여러 장을 공급하는 것이 주 수입원 중 하나였는데 이마저도 사라지면서 영업을 계속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무료로 줘도 싫다는데"…태극기에 고개 젓는 사람들

 

무료로 나눠주는 태극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한국자유총연맹 달서구지회는 매년 2000여장의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지만, 해마다 태극기를 거부하는 시민들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도하석 달서구지회 사무국장은 "회원들의 사비를 들여가며 태극기를 배부하는데 싫어하시는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며 "코로나19로 태극기 무료배부도 금지될 때가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태극기 보급을 위해 힘쓰는 단체들은 무엇보다 인식 개선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2002월드컵·2012런던올림픽 등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등장했던 태극기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은 국가 차원에서의 교육·홍보가 부재했다는 지적이다. 일선 학교에서 태극기를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로 인식이 악화됐는데도 제대로 된 대응이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윤호 태극기선양회 사무총장은 "일부 보수단체의 집회로 태극기를 보는 시선이 나빠지면서 국경일이 다가와도 태극기를 내건 세대가 아파트 단지 전체에서 1~2가구에 그칠 정도가 됐다"며 "태극기는 정치적 갈등의 대상이 아닌 한국 국민의 자긍심이라는 것을 알고 관련 부처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출처 : "이미지 나빠져" "공짜도 싫다"..피땀으로 지킨 태극기가 어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