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투표를 한다면
요즘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의 집회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저도 그 먼저 토요일에 남대문시장으로 시계밧데리를 교체하러 갔다가 버스가 통제되는 바람에 두 시간이나 걷다가 버스를 탔습니다.
시위를 주체하는 팀은 진보팀과 보수팀으로 큰 두 진영 아래 여러 단체들이 모여서 무슨 장날처럼 시위를 하는가 봅니다. 지방에서 동원된 대형 관광버스가 도심 주변 골목골목에 장여 있고,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시위자들이 먹을 수 있는 간식과 음료를 나르기 바쁘고 그들을 통솔하는 사람들은 손에 마이크를 쥐고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아마 일당을 받고서 올라오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좋은 가을날에 여러 지방에서 서울까지 대절버스를 타고 올라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엊그제 시위에는 야당 국회의원 여섯 명인가가 나와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고 합니다. 아직은 차마 탄핵이라는 말을 꺼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대통령이 물러나고 다시 선거를 치루면 이재명이 당선될 거라는 확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대선투표를 다시 한다면 이재명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정치학의 가장 오래된 물음이다.
지금까지 무수한 학설들이 제기됐는데 일군의 학자들은 엘리트의 ‘품질’을 통제하면 전쟁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프랑코 같은 비정상적 인간이 지도자가 되는 일을 막는다면 전쟁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과연 그렇게만 된다면’하고 호기심을 느끼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주장이 농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모든 국가가 모든 엘리트를 통제할 현실적 방도가 없다. 지금도 선진국에선 비교적 신사인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가 된다. 그 와중에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공격적 성향의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나머지 지도자들이 신사라 한들 세상은 불안해진다. 지금 세계가 그렇다.
둘째 과학이 발전해 부적격자를 ‘싹’ 단계에서 걸러낼 수 있는 수단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장치를 교육 현장에 도입하는데 찬성할 수 없을 것 같다. 운명이 통제되는 세상에 무슨 매력이 있을 것인가.
‘우연’이 사라진 세상은 비록 평화로울망정 행복이 꽃 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희망도, 기대도, 공상도 없을 것이므로. 한 포기 잡초도 허용하지 않는 도심의 인공재배 시설 같은 세상에서 사느니 운명의 장난이 허용되는 좀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괴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히틀러는 없어야 한다. 바람직한 것은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통해 부적격자가 권좌에 오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히틀러는 정상적,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하드웨어만 살아 있고 그것을 제대로 작동시킬 소프트웨어로서의 국민 정치 양식이 타락해서 발생한 일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정치 양식의 타락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극우 혹은 극좌 포퓰리즘 득세가 확실히 잦아졌다. 트럼프 이후 미국 공화당은 예전의 그 당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공화당 지지자들 중 과반 이상이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진 것이 ‘부정 개표’ 때문이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사실과 거짓,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개인의 ‘상식력’이 후퇴하는 조짐이 민주주의를 하는 여러 국가에서 나타난다. 기후변화만큼이나 분명하다.
나는 그중에서도 한국이 제일 걱정이다. 이 나라는 ‘상식력’이 고갈돼서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지경에 이르렀다.
야당 대표 스스로 자신의 분신이라고 칭한 최측근이 19일 구속됐다. 사건 관련자들의 영장과 공소장에서 검찰은 이 사건의 처음과 끝, 몸통이 야당 대표 본인이라는 사실을 줄곧 적시해왔다. 그런데 170명이나 되는 야당 의원들 중에서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상식력이 작동하는 정당이라면 이럴 수 없다.
야당 대표의 대장동 관련 의혹은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 단계에서 이미 터져 나온 것이다. 그는 대장동 말고도 이런저런 의혹(지금 검찰이 동시다발적으로 입증하는 중이다)과 확정된 ‘결격사유’가 너무 많은 나머지 뒤에 나온 추문이 앞의 추문을 덮어주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완벽하게 민주적이었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범죄자가 일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일말의 찜찜함도, 경계심도 없었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이번에는 당의 대표로 뽑았다. 압도적인 표차로. 그가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 보듯 뻔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당 대표로 뽑은 것을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
히틀러가 선거에서 이길수 있었던 것은 독일 국민의 정치 의식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히틀러의 본색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모든 문제를 다 보고서도 한번은 대선후보로, 한번은 당 대표로 뽑았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구동하는 양식으로서의 소프트웨어가 망가졌다는 증표가 아닌가.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태원 사고를 계기로 정권 퇴진 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두려운 생각이 든다. 정권 퇴진 운동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구조가 두려운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너 더럽다’고 나무라면 그건 웃기는 일이다. 적어도 똥은 닦고 나서 겨를 비웃어야 정상이다. 민주당과 그 주변에선 그 지독한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우연’이 허락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만인의 예상을 뒤엎는 기적과 인생역전 스토리를 더 많이 보고 싶다. 그러나 그 기적이 범죄자가 민주주의의 검증 장치를 뚫고 지도자가 되는 우연은 아니었으면 한다. 하마터면 지난 대선 때 그럴 뻔했다. 그런데 그 사실에 경각심과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내일 다시 대선투표를 하면 ‘범죄자 대통령’이 뽑힐 가능성이 높게 나오기도 했다. 그 무신경과 선택적 분노에 소름이 돋는다.>매일경제. 노원명 기자
저도 필자와 100%공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능한지는 제가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다시 대통령 선거를 한다고 해서 범죄자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투표할 생각은 정말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 이재명네는 문재인의 행운이 다시 오길 간절히 바라겠지만 우리 국민이 두 번 속지는 않을 거라 믿습니다. 민주당 179명 의원이 모두 거리로 나서 윤석열 퇴진운동을 벌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겁니다.
법카 교체로 밥 먹기 같은 치사한 일부터 대장동, 백현동, 위례신도시, 성남FC같은 대형 범죄가 다 검찰이 만든 거라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범죄자에게 투표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