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 양보해도 세 가지는
프랑스 정부가 정년 연장 등을 핵심으로 하는 연금개혁안을 관철시킨 뒤에도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는데 23일 프랑스 전역에서 100만 명이 거리로 나서고, 보르도 시청사까지 불타오를 정도로 시위가 격렬해졌습니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단기적인 여론조사보단 국가 전체의 이익을 택하겠다”며 거듭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결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대로라면 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절박함 때문일 것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첫 임기를 시작한 2017년에 1000만 명이던 연금 수급자는 지난해 1700만 명으로 증가했고, 2030년엔 2000만 명으로 늘어난다고 하는데 연금재정은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서 갈수록 적자 폭이 가파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연금 운용 방식과 보험료율 등이 크게 달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수급자 증가 추세만 놓고 보면 한국이 더 심각하다고 합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국민연금 중 노령연금 수령자는 535만 명인데, 2030년에는 761만 명으로 42.2%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17.6% 증가하는 프랑스보다 속도가 2.4배로 빠르다는 계산입니다. 이후에도 수령자는 2040년 1160만 명, 2050년 1467만 명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악 수준인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도 연금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인데 프랑스는 2040년까지 인구가 늘지만 한국은 이미 2020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됐습니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로 보험료를 내야 할 가입자 수 역시 줄어들고 있어 정부의 잠정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2055년이면 기금이 완전히 바닥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연금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은 1998년 소득의 9%로 정해진 이래 25년간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에 애써 외면했던 연금개혁은 프랑스보다 대한민국이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프랑스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연금개혁 때문이다.
정년(연금 100% 수령 연령)을 2년 늦추는 개혁안에 좌파 연합과 노동조합, 극우 정당도 반대하고 나섰다. 정치적 상극인 좌파와 극우가 같은 쪽에 서 있을 정도니 연금개혁의 파괴력을 실감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22일 생중계 된 대국민 담화에서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 연금 수급자가 1000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1700만 명이 됐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030년엔 3000만 명이 된다고 한다.
프랑스 내부의 반대 여론이 높지만, 그렇다고 연금 제도의 지속성을 확보할 대안이 뚜렷하지도 않다. 현상 유지를 원한다고 할까. 마크롱 대통령도 "노조가 합법적으로 시위와 파업할 권리를 존중하지만, 어떤 노조도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12월 보건복지부가 낸 4가지 연금개혁 방안 중 첫째가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라는 현행 유지였다. 미래 세대를 제외한 나머지엔 크게 불만 없는 방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했지만 연금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이번에는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사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금 재정의 적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1월 민주연구원 주최 바람직한 연금개혁 방안 토론회 축사를 통해 “초저출생이 지속하면 근로자 1인당 부양해야 하는 노령인구는 늘어나 젊은 세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연금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차원에서 연금개혁 특위를 만들고 보수와 진보 학자가 모두 참여한 민간자문위원회도 발족했다. 예상대로 보수 쪽에선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를, 진보 쪽에선 노후 소득 보장 강화를 내세웠다. 끝장 토론을 해 단일안을 만든다고 해서 기대를 모았지만 아직 그런 소식은 없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10월에 종합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겠단 것 말고는 입을 닫고 있다. 지금처럼 여야 대립이 극심하고 내년 4월 총선까지 앞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개혁의 선두에 서야 할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문제 해결과 근로시간 유연화 문제 등의 여파로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백번 양보해도 적어도 세 가지는 해야 한다.
먼저 정부·여당이 반드시 단일안을 내고 민주당도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현상 유지를 포함한 4가지 안을 낸다는 것은 개혁을 안 하겠다는 의미다.
둘째 2055년으로 예상되는 연금 고갈 시점을 현 추계 기준으로 10년 이상 늦춰야 한다. 국민연금법상 5년 단위로 재정 수지를 계산하고 국민연금 운영 계획을 마련하게 돼 있는데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너무 어렵다.
세 번째는 보험료율 인상이다. 연금개혁 중 중요한 게 보험료율과 나중에 받을 연금액 수준인 소득대체율을 정하는 것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에선 보험료율을 15% 정도로 높이면서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주로 논의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9% 보험료율로는 지속성을 확보할 수 없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 일본 후생연금의 보험료율은 18.3%로 한국의 두 배 수준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복지부가 보험료율 인상안을 보고했을 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때 실기했기 때문에 지금 더 고통스러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지금 기회를 놓치면 개혁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프랑스의 연금개혁을 보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국내 주요 노총은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정년 연장과 연금개혁을 함께 묶어서 추진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 심각한 인구 구조의 격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년 연장 카드를 쉽게 꺼낼 수도 없다. 기성세대가 자기 몫을 먼저 내놔야 MZ 세대를 설득할 수 있다.
기업도 문제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의 절반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정년이 연장되고 보험료율이 오르면 기업 부담은 더 커진다. 중소기업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다. 기업에도 이를 준비할 시간과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중앙일보. 김원배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 [김원배의 시선]연금개혁, 꼭 해야 할 세 가지
모두가 만족하는 개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어느 한 쪽이 득을 보면 다른 쪽에서는 손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이익만 주장하면 바꿀 방법이 없을 겁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수긍하는 선에서 개혁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으니 차선의 방법, 아니면 차, 차선의 방법으로라도 개혁을 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앞에 산적한 많은 난제에 대해 정말 진심으로 그것들을 생각하고 고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천하흥망 필부유책이지만 지금 국정을 맡고 있는 대통령과 각료, 국회의원들이 좀 더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