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잠든 사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담화를 통해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히면서 정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국회 출입이 봉쇄되고 계엄군의 국회의사당 진입 시도가 이어지면서, 의사당 주변에선 고성과 비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야(與野) 의원 190명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50여 분 뒤인 4일 새벽 1시 1분 본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지체 없이 해제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계엄령 선포는 무효가 됐다.
윤 대통령은 전날 밤 10시 25분쯤 발표한 긴급 담화에서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다"고 비상계엄의 명분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잇따라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는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다"고 했고,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 처리를 강행한 것과 관련해서는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예상 밖의 계엄 선포를 접한 여야는 모두 소속 의원들에게 "국회로 집결하라"는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두 계엄령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동훈 대표는 계엄 선포 직후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오후 11시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도착해 "요건도 맞지 않은 위법한,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라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국민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후 바로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이재명 대표는 오후 10시 53분쯤 국회로 향하는 자신의 관용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배반했다. 이 순간부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사법제도도 다 중단되고 군인들이 심판하는 비상계엄이 시작됐다. 이제 곧 탱크와 장갑차 총칼을 든 군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금 당장 군대를 풀어 우리를 체포할지 모른다"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속속 국회의사당으로 집결했다. 민주당은 이날 밤 10시 50분 박찬대 원내대표 명의의 긴급 문자메시지를 통해 소속 의원과 보좌진·당직자에게 "지금 즉시 국회 본청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국민의힘도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어떻게든 본청 안으로 들어 가야 한다", "비상계엄 해제에 표를 보태겠다"고 성토했다.
국회 경비단과 경찰은 계엄 선포 40여 분 만에 국회의사당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신분이 확인된 국회의원과 의원 보좌진만 국회 안으로 입장이 허용됐다. 관심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언제, 어디서 본회의를 소집해 국회 재적의원의(300명)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을 해제하느냐였다. 헌법 제77조 6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다.
우 의장은 전날 오후 11시 55분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회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하겠다"며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 특별히, 군경은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우 의장이 담화를 발표하던 그때, 국회 상공엔 군 헬기가 여러 대 나타났다. 특전사 소속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속속 헬기에서 내려 국회 본청을 향해 왔다.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도 군 탱크가 출발했다. 군인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진입을 시도하자 민주당 일부 의원과 보좌진들이 앞장서서 스크럼을 짰다.
이후 본청 문을 사수하려는 민주당 보좌진들과, 내부로 진입하려는 군인들 간 대치가 수십 분간 이어졌다. 본청 내부에서는 누군가 회의실 문짝과 책상 등을 들고 와 군인들의 진입을 온 몸으로 방어했다. 격한 몸싸움이 이어지는 사이 긴급 회의를 이어가던 여야 의원들은 본회의장 자리로 이동, 계엄 해제 의결을 준비했다. 계엄 선포 2시간여 만인 4일 오전 12시 20분쯤 우 의장이 국회 본회의장 자리에 착석했다.
우 의장이 "절차의 오류 없이 국회법에 따라 오류 없이 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격앙된 일부 야당 의원들은 "거수로 하면 되지 않나", "빨리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의원 20여 명도 본회의장에 자리했고, 한동훈 대표는 본회의장 뒤편에서 당직자 등과 심각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이재명 대표는 4일 새벽 1시쯤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이 대표는 본회의장 뒤편에 있던 한 대표에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국회 직원들이 재석의원 수를 파악했고 이내 표결이 이뤄졌다.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는 순간이었다.>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출처 ; 문화일보.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선포부터 해제까지 긴박했던 2시간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