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폭 정치
<우리나라 대통령은 취임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역사와 대화를 시작한다는 말이 있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정치판 일상, 매일 일정을 만들어 만나던 시민과의 접촉이 부쩍 줄면서 홀로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모든 책임이 찾아와 머무는 자리에서 역사에 기록될 선택과 결정을 하는 그 중압감의 시간을 청와대란 공간은 더욱 외롭게 했다. 권위주의 시대에 왕의 구역처럼 만든 그곳은 국정에 필요한 소통의 단절을 조장해 민심과 멀어지는 물리적 요인이 됐다.
그래서 대선마다 제시됐던 청와대 이전 공약을 윤석열 대통령은 실행에 옮겼다. “청와대에 가보니 ‘여기 있으면 큰일 나겠다’ 싶더라”며 밀어붙였는데, 옮겨간 곳이 하필 용산의 국방부 청사였다. 거기서 2년 반을 보낸 그는 난데없이 비상계엄이란 ‘폭탄’의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자신을 향해 터지는 자폭용임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수수께끼지만, 아무튼 국방부를 끼고 앉아 집무를 시작한 대통령이 결국 군대를 동원했다가 정권 붕괴를 자초하는 기묘한 수미상관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도어 스테핑을 이어가며 청와대에서 나온 취지를 살리는 듯했지만, 돌연 중단하면서 여론을 전하는 언론과 대화가 끊겼다. 애초부터 야당과는 고집스럽게 대화를 거부했고, 여당과의 대화도 원만치 못해 이준석 한동훈 등과 척진 사이가 됐다.
총선 참패 후 친윤계마저 위축되면서 고립감이 더욱 커졌을 시기에 차라리 역사와 대화했다면 나았을지 모르는데, 그는 주로 국방장관과 대화를 한 모양이다.
대통령실도 내각도 여당도 계엄 계획을 몰랐다고 한다. 계엄사령관조차 TV를 보고 알았다니, 이 사태는 사실상 대통령과 국방장관, 고립된 권력자와 고교 선배 예스맨의 2인극이었다. 황당한 포고령 문구는 그들의 대화가 민심과 시대와 얼마나 동떨어진 거였을지 말해주고 있다.
그 위험한 고립은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스스로를 몰아넣은 궁지에서 ‘확 그냥…’ 하며 자폭 버튼을 눌렀을 커튼 뒤의 장면이 어렵잖게 그려진다.>국민일보. 태원준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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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칼럼 [한마당], 자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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