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섬서성박물관과 대안탑

2011. 1. 26. 22:52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은 관심이고, 만남이며, 사랑입니다

 

 

 

 

 

 

 

 

 

 

 

 

 

 

 

 

 

 

 

 

  중국의 고대를 보려면 서안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엔 장안이었고, 오늘엔 서안, 중국식 발음으로는 시안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도읍을 정한 곳, 한 나라 , 당 나라가 도읍을 해서 무려 1000여 년 가까이 중국의 도읍이었던 서안은 송나라 시대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지금은 초라한 시골 도시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라하다는 것은 중국의 기준이고 현재 인구가 750만을 넘는, 우리나라로 보면 대도시입니다.

 

 

 조상의 명예로 먹고 사는 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 서안도 제가 보기엔 궁끼에 찌들은 모습이었습니다. 예전 당 나라 때의 성곽을 복원하여, 성 안과 밖으로 나눠져 있고, 밤이면 성곽에 조명을 설치하여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낮이면 그게 환상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늘 뿌연 공기 속에 무덤처럼 잠겨 있는 도시,,,,

 

 

 서안의 자랑은 예전의 도읍이었다는 것 말고는 없어 보였습니다.

다만 섬서성의 박물관과 서안 박물관, 그러니까 성급 박물관과 시급 박물관이 있고, 예전엔 서안 박물관이었다가 지금은 비림이라고 해서 비문박물관으로 강등이 된 또 하나의 박물관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당 나라 때 현장법사가 천축국에 다녀와 삼장이라는 칭호를 받고, 그가 가져왔던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세웠다는 자은사와 대안탑이 서안시의 상징처럼 남아 있습니다. 중국에서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곳, 그리고 밤에 나다니기가 불안할 정도로 치안이 안 좋다는 오명을 가지고 있지만 당 나라 때 장안은 거주 외국인이 40만 명이 넘는 정말 국제도시였습니다.

 

 

 그게 600년대에서 700년대사이인 것 같은데 2010년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30만 명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방에 가서 고대광실의 기와집이 지붕마다 풀이 자라고, 마당과 뜰에는 잡초가 무성한데 늙으신 할머니 한 분이 집을 지키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연민이 서안에서도 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