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30. 16:52ㆍ세렌디피티(serendipity)/좋아하고 사랑하는
요즘은 연예인들 이름 앞에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곧잘 붙인다. 국민 가수, 국민 배우 등을 너무 쉽게 쓰고 있다. 적어도 국민 가수나 국민 배우는 한 사람이면 족할 것인데도 방송이나 언론매체에서 너무 남발하는 것 같다.
국민 가수는 ‘남인수’나 ‘이미자’ 정도면 충분할 것이고, 국민배우는 ‘안성기’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배우 문근영이더러 ‘국민 여동생’이라고 하던데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연예인 이름 앞에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 한다면 적어도 50년 이상은 그 분야에 종사했어야 하고, 끊임없이 그리고 꾸준한 활동으로 쉬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십 년을 했다고 다 ‘국민’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만큼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어느 특정 세대에서만 지지를 받는 사람도 곤란하고 폭 넓게, 정말 모든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이름 앞에만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허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얼굴이 예쁜 연예인이 너무 많다. 예전엔 몇 년 주기로 예쁜 연예인이 등장했지만 지금은 동시다발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 한 편만 인기를 끌면 졸지에 중견 연예인처럼 행동하고 대우를 받는다. 등장한 사람이 많다보니 나눠먹기라도 해야 할 판이고, 조금만 인기를 끌면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이 되고 있다.
하기는 요즘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고 하면 관객 수백만 명은 동원하는 판이니 예전에 성공한 영화 수십 편과 맞먹는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처럼 영화관이 많이 생기고 관객이 늘어난 것을 예전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어릴 적에는 하이틴 영화라는 갈래가 있었다. 이런 분류가 맞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한 시대에 유행처럼 번졌고 그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은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지금은 50대를 훌쩍 넘긴 이덕화, 전영록이 고등학생으로 나왔고, 불우하게 세상을 뜬 손창호, 그리고 이승현, 김정훈 등이 남학생 역을 단골로 맡았다. 여자배우는 임예진, 강주희, 김보연, 김보미 등이 있었는데 가장 돋보인 배우가 임예진이다.
임예진도 이미 사십대 후반이라 이젠 아줌마 역으로 물러났지만 지금의 어느 청춘스타도 당시의 임예진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임예진이 예쁜 얼굴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요즘 청춘스타와 비교할 때 훨씬 더 인기가 높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임예진은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영화에서도 고등학생역만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임예진의 카페를 들어가 보니(cafe.daum.net/imyejin) 데뷔작은 1974년에 나온 『파계』로 되어 있는데 난 이 영화는 보지 못했다. 임예진이 출연했던 영화로 내가 처음 본 것은 1976년에 개봉된 문여송 감독의『진짜, 진짜 잊지마』였다. 이 영화에서 이덕화와 함께 주연을 맡았던 임예진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홍성극장에서 단체관람으로 보았었다. 극장에서 영화 관람료가 70원이던 때에 학교에서 단체로 가면 20원에 볼 수 있었다.
임예진은 『진짜, 진짜 잊지마』이후, 『진짜, 진짜 좋아해』, 『진짜, 진짜 미안해』에서 주연을 맡았고, 『여고 졸업반』, 『정말 꿈이 있다구』, 『첫 눈이 내릴 때』, 『소녀의 기도』, 『선생님 안녕』, 『쌍무지개 뜨는 언덕』, 『너무너무 좋은 거야』, 『푸른 교실』 등 2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여 ‘하이틴 영화’라는 한 갈래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하이틴 영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문여송 감독과 석래명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문여송 감독 이후에 등장한 석래명 감독이 『고교 얄개』를 비롯해서 『고교 우량아』 등의 영화로 새로운 ‘고교 시리즈’를 이어가서 한동안 한국 영화계는 하이틴 영화가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다. 하이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가 임예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임예진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영화계에 ‘하이틴 영화’라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임예진이 나온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았을 것이나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본 영화는 『진짜, 진짜 좋아해』, 『선생님 안녕』, 『여고 졸업반』, 푸른 교실』 등 몇 편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도 개봉할 때에 본 것은 한 편도 없고 서울에서 개봉한 몇 달 뒤에 지방에 도는 필름으로 봤다. 그렇게라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 시절에 지방에서 고등학생이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는 일이었다. ‘학생입장가’인 영화라도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영화가 아닌 것을 보러 갔다가 걸리면 정학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체로 가는 영화는 한 달에 한 편 정도에 불과해 보고 싶은 영화가 들어와도 어떻게 힘을 쓸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영화의 내용이나 제목을 떠나서 임예진이 나온 영화라면 다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먼저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재미있는 영화가 들어왔으니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졸라댄다.
그럴 경우 대개 선생님은 가시지 않으면서 너희들이나 보고 오라고 하시면 나중에 걸리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써 먹었다. 사실 선생님하고 같이 봐도 문제가 될 영화들은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같이 가고 싶기도 했었다. 벌써 그때쯤은 머리가 돌아갈 때라 학생부에 계시는 여자 선생님들께 이런 수작을 하곤 했다.
내가 임예진을 알지 못하면서도 좋아했던 것은 그 친구가 우리와 같은 학년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에 임예진은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합격을 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오라고 했는데도 시험을 쳐서 당당히 국문과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잡지에서 읽었다. 그 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언제 공부를 하여 특혜 없이 대학에 합격을 한 것인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서울에서 재수를 하면서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재수를 할 때는 벌써 하이틴 영화에 싫증이 나서 아마 한 편인가 보고는 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재수하면서 언제 영화를 보느냐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용산극장에 많이 다녔다.
‘미성년자 관람불가’만 빼고는 어떤 영화를 봐도 누가 시비를 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하다 지치면 자주 극장에 다녔었다. 그때 많이 본 영화가 소위 ‘정통중국무협영화’라는 홍콩영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허접하기 짝이 없는 그런 영화들을 자주 보았다.
재수시절이 끝나면서 바로 군에 갔기 때문에 임예진이 나오는 영화는 그 뒤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이틴스타’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임예진이다.
임예진은 국민드라마로 이름을 날렸던 김수현의「사랑과 야망」에서 ‘선희’역을 맡아 드라마에서도 성공한 탤런트가 되었다. 나는 드라마는 즐겨 보지 않는 편이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임예진이 나오는 드라마들은 그래도 시간에 맞춰 보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에서 왼손으로 밥을 먹던 임예진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 사람의 스타를 선정하여 ‘국민여동생’이라는 말을 써도 좋다고 한다면 그 수식어는 어느 누구도 아닌 임예진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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