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1. 11:30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4선 의원으로 민자당 대표를 지낸 이춘구(78)씨가 20일 새벽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육사 14기인 고인(故人)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광주 포병학교 교수부장으로 있으면서 신군부의 병력 동원에 반대했다. 그가 학교 정문을 막아서는 바람에 그 부대 병사들은 동원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군부는 각계의 인재를 국보위에 포섭하면서 군내 신망이 두터운 그를 재무위원으로 차출했다. 그는 군복(준장)을 벗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나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육참총장의 꿈을 접은 것이다.
1981년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그는 노태우 내무장관 밑에서 내무차관으로 일한 인연으로 6공 출범의 주역이 됐다. 1988년 12월 내무장관 취임 7개월 만에 12명이 탈옥한 사건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냈다.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반려하자 병원에 입원까지 해서 뜻을 관철했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박철언씨 등 측근들의 월권에 대해 여러 차례 직언을 했다. 일부 집권 세력은 "대통령에게 항명한다"고 그를 몰아붙였다.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주도의 3당 합당이 이뤄졌을 때 "내 소신과 다르다"며 청와대 만찬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대표를 도와주라는 노 대통령 지시로 당 사무총장을 세 번째로 맡았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말 5·18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이듬해 1월 그는 정계를 은퇴했다. "나라 안정과 국민에게 평화를 주는 게 정치의 본질인데 정치인들이 지역감정 등으로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입문한 것에 후회감을 가졌다.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도리다. 그 사람들(전두환·노태우)이 나쁜 짓을 했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그들을 매도할 수 없었다. 정치 자금 문제가 공공연한 정치 관행이었음에도 사람들이 자신들은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심한 환멸을 느꼈다."
그가 가슴속 얘기를 이렇게 길게(A4 1장 분량)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것은 정치 인생 15년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 가까운 지인 몇몇과만 교류하고 독서로 소일했다.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뭔가 기록을 했으나 나중에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가 내무장관 시절 사업에 어려움을 겪은 친동생이 자살했다. 주변에선 "이 장관이 수천만원의 농협 융자건을 도와주지 않아 그렇게 됐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의 보좌관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친동생이라도 이권 등에 개입하지 못하게 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1993년 첫 공개 때 재산은 9억9000만원이었다. 1994년 국회부의장을 물러날 때는 남은 판공비를 반납했다. 그가 정계를 떠날 때 후원회에서 모금을 해줬으나 받지 않았다. 비리에 연루돼 구설에 오른 적이 없었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3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춘구씨"라고 했다. "이씨는 부하들에게 살벌할 정도로 엄격하다고 해서 별명이 저승사자였다. 그런데 그는 원칙을 정하면 철저히 지켰다. 다른 정치인들처럼 구질구질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식사할 때면 찬물에 밥을 말아 반찬 한두 점 집어 먹는 식으로 끝냈다.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차를 탈 때 앉자마자 차가 떠나지 않으면 기사를 나무랐다. 그는 별로 웃지 않았다. 가끔씩 희미한 미소를 짓는 정도였다. 그래서 '저승사자' 이외에 '냉혈한' '로봇'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런 그를 보좌관과 운전기사는 30년 이상 떠나지 않았다. 보좌관은 "일을 워낙 철저히 하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알고 보면 누구보다 따뜻하고 여린 분이었다"고 했다. 빈소에 모인 사람들은 "고인은 소신에 살다 소신에 죽은 군인이자 정치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깨끗했던 정치인 이춘구 님이 세상을 하직했다는는 부음을 들으니 안타깝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고인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했지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어느 정치인보다 훌륭했던 최고의 사람이었습니다.
말 바꾸기, 소신 바꾸기, 당적 바꾸기로 세상에서 제일 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분이라 여기 기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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