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7. 09:02ㆍ세렌디피티(serendipity)/좋은 수필 선
어제는 정신없는 일로 하루가 갔습니다.
여기 들어올 시간도 없었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어제가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하신 날이라고 한 것 같아서 역시 고인이 되신 박완서 선생님이 쓴 글을 올립니다.
<지난해 가을이었다.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인 이해인 수녀님을 문병 갔다가 같은 병동에 추기경님이 입원해 계시다는 걸 듣고 가 뵙고 싶어 가슴이 다 울렁거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환이지만 위중하여 문병객을 다 사양한다는 건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수녀님 ‘빽’이면 혹시 뵐 수 있을까 했는데, 먼저 가 뵙고 오신 수녀님이 오히려 말리셨다. 편히 주무시는 시간이 많은데 의식이 있으실 때는 간호하는 수녀님들이나 문병 오는 가까운 분들에게 미안해하시고 감사를 표하고 싶어 애쓰신다는 말을 들었다.
병환 중에도 남을 배려하기 얼마나 힘드실까. 이승에서 마지막 안식을 방해하지 않는 것도 추기경님을 배려하는 길인 것 같아 뵙기를 단념했다. 선종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그때 뵐걸, 내 적극적이지 못한 성품에 대한 후회였다.
나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 치열했던 1980년대에 가톨릭 교리 공부를 시작해서 몇 번의 재수 끝에 1985년 영세를 받았다. 가톨릭에 대해 확신이 생겨서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한 가운데 그분이 계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분은 정의를 위해 박해받고 쫓기는 이들을 말없이 그분의 날개로 덮고 품으셨을 뿐, 그들을 결코 선동하거나 부추기지는 않으셨다. 만약 그분까지 투쟁적이었다면 그분의 그늘, 그분의 날개 밑이 그렇게 편했을 리가 없다. 정의의 투사에게도 그분의 그늘이 필요했겠지만, 자유를 위해 피 한 방울 흘리기 싫었던 나처럼 소심한 비겁자에게도 그분의 그늘은 필요했던 것이다.
이건 들어서 알고 있는 얘긴데, 그분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 중형을 받고 수감된 인사들의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자상하고 따뜻했을 수가 없다고 한다.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그런 운동권 남편을 둔 여인도 그런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때 명동성당 내의 전진상 교육관에서 자주 추기경님을 뵙고 간소하고 푸근한 식사를 대접받으며 추기경님하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할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겠냐고 지금도 털어놓곤 한다. 그 여인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할 때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여인을 품에 안고 다독거리게 된다.
추기경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하시고 비교적 한가해지신 후였는데 그것도 내가 찾아뵙거나 요청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중간에서 마련하거나 초청해준 자리였다. 어느 신문사의 초대로 러시아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나란히 앉아 측근에서 뵌 추기경님은 제의가 아닌 간편한 복장이어서인지 너무도 가볍고 작은 분으로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연이 끝나자 일어서셔서 어찌나 열렬하게 오랫동안 박수를 치시는지 연예인에 열광하는 요즘 청소년과 다름이 없으셨다. 누군가 정말인지 추측인지, “저 발레리나 중의 하나를 추기경님이 특별히 아끼셔서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저렇게 박수를 치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누구도 어린이같이 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지 못할 것’이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나 ‘저 어른이야말로 천당은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좀 무엄한 생각을 했었다.
그 후에도 더러 모시고 식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엘리베이터 앞에서였다. 우리를 초청해준 측에서 승강기 앞에 양쪽으로 지켜서서 추기경님이 먼저 안으로 드시도록 안내했지만, 추기경님은 옆으로 비켜서시면서 나한테 먼저 타라고 하셨다. 당연히 내가 사양하자, “레이디 퍼스트”하셨다. 더 사양하지 않고 냉큼 올라타면서 “영 레이디(young lady)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나보다 영이지요.” 하시면서 뒤따라 타셨다. 그럴 때 그분은 추기경 같지도, 소년 같지도 않고 매너 좋고 유머감각 풍부한 노신사처럼 보였다.
요한바오로 2세가 선종하시고 나서 접한 그의 어록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바티칸은 지구 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이 작은 나라가 전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제로(0)에 가깝지만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무한대다.’ 그게 바로 가톨릭 정신이라면 김수환 추기경님이야말로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교회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훌륭하신 분이 떠나면 그 빈자리가 더 커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남은 사람들이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 좀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