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를 죽여라

2021. 4. 20. 07:11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저는 솔직히 김학의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릅니다. 언론 보도를 보고 그가 건설업자에게 성성납 향응을 받았고, 그로 인해 두 번이나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두 번 다 무혐의로 판정이 났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김학의는 전 정권 때 사람입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 비리, 소위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다시 소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간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그의 죄가 언론을 도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민들로부터 ‘죽일 놈’이 되었고, 그가 몰래 출국을 하려다가 검거가 된 뒤에도 무조건 ‘죽일 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검거하기 위해 불법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얘기가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19일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 내부문건을 폭로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복잡하고 민감한 사건의 하나인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에 대한 장문의 보고서입니다.

 

박준영은 진상조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계속 보고서 문제점을 지적해왔습니다. 박준영은 ‘정의롭게 처리되길’ 기대하고 지켜봤지만. 관련수사가 마무리되는 현시점까지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해..불이익을 무릅쓰고 ‘창피할 정도로 무책임했다’고 양심선언하면서. 보고서를 한국일보와 SBS에 제보했습니다.

 

2.김학의 사건은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같은 의미로 통했습니다. 별장 성상납이란 엽기 뇌물을 여러 차례 받은 김학의가 ‘검사끼리 봐주기’덕분에 무죄가 된 현실을 보면 검찰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김학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 두차례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서도 무혐의 처리됐습니다. 분통 터질 일입니다. 그걸 시원하게 재수사하겠다니 누가 박수를 치지 않겠습니까.

 

3.근데..그렇게 시작된 김학의 사건이 엉뚱하게 ‘윤석열 검찰총장도 접대 받았다’로 비화했습니다. 김학의가 한밤중에 도망치려고 공항에 나갔다가 출국 금지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알고 보니 출국금지 과정 자체가 불법이었습니다.

김학의 처벌, 검찰개혁이란 명분은 좋았지만..엉뚱하게도 검찰 길들이기와 정치적 편 가르기를 위한 불법행위로 변질됐습니다.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치열한 공방에 사건의 진상은 온데간데없는 혼돈이 이어져왔습니다.

 

4.박준영의 고발은 이런 혼선과 공방을 정리하는 결정적 증거로 주목됩니다. 직접 현장에 있었던 양심적 변호사의 내부고발이기에 신뢰가 갑니다.

한마디로 정치적 목적에서 보고서를 왜곡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윤석열 접대의혹’의 근거는 김학의를 접대한 건설업자 윤중천과의 면담보고서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조사단 이규원 검사가 윤중천에게 ‘윤석열도 별장에 갔지?’라고 질문하고선 마치 윤중천이 대답한 것처럼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5.문제가 심각한 건 이런 엉터리 보고서 작성이 정치적으로 의도되었다는 의혹입니다.

2019년 5월 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할 당시 보고서나 백서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9년 10월 11일 한겨레신문이 1면 톱기사로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받았다’고 보도합니다. 당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를 한창 지휘하던 시점이었습니다. 한겨레는 7개월 뒤 정정 보도했습니다.

 

6.이러한 고발에 근거할 때 정치적 조작의 배후는 대충 짐작이 됩니다. 박준영이 고발한 사람은 당시 진상조사단 동료 이규원 검사입니다. 중앙일보취재를 종합해보면 이규원은 조사만 아니라 언론대응까지 지휘했습니다. 이규원 검사는 김학의 출국금지 과정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하기 위한 허위문서를 작성한 장본인입니다.

 

7.이규원 검사 단독범행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의혹이 눈길이 쏠리는 곳이 청와대입니다.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그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로 같은 법무법인에서 근무했습니다. 이규원이 김학의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이광철이 법무부와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규원은 김학의 보고서를 엉터리로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이광철과 수시로 통화했습니다.

 

8.대표적인 조국 라인 이광철은 청와대의 주요사건에 빠지지 않습니다.

연초 검찰인사 과정에서 직속상관인 신현수 민정수석을 바이패스한 당사자로 추정됩니다. 문재인 친구 송철호 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개입의혹에도 연루돼 있습니다.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4ㆍ7 보궐선거 이후 개편에서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9.이광철은 두 가지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김학의 불법출국금지 관련으로 수원지검에 나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가수 승리가 대표였던 클럽 ‘버닝썬 사건’을 덮기 위해 ‘김학의 사건’을 부풀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나가야 합니다.

 

10.전형적인 정권말 현상입니다.

정권초기 대의명분(검찰개혁)으로 야심차게 출범했지만..정권의 얄팍한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바람에 초심은 사라지고..그 과정에서 난 상처를 덮고 가리지만 속으로 곪아..마침내 정권말기에 내부고발이란 형태로 터지고 마는..

 

정권 바뀌고 재, 재수사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중앙일보, 오병상〈칼럼니스트〉2021.04.19.

 

“‘죽일 놈’을 붙잡는데 불법이면 어떠냐?”게 요즘 많은 사람들의 논조인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소위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겐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현실이 와 닿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김학의가 죽일 놈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권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 김학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것은 거의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이런 사건이 그대로 시류에 따라 흘러갔다면, 또 다른 윤지오가 나올 것이고, 또 다른 ‘죽일 놈’도 만들어질 거라는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