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실크로드 여행기(1)

2021. 9. 9. 12:10시우의 여행기

2008년 중국 실크로드 여행기

 

실크로드 :

 

<실크로드는 중국의 장안(오늘날의 시안)에서 로마까지의 동서양 교역로를 말한다. 주로 비단을 교역하였다 하여 비단길이라는 뜻의 실크로드로 불리지만, 꼭 비단만을 싣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도자기, 향료, , 황금, 보석, 거울, 약재 등 셀 수 없이 많은 물품들이 낙타나 말의 등에 실려 이 기나긴 모랫길을 오갔다.

 

물품만 오간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오가고, 문화가 오갔다.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 교, 조로아스터 교를 비롯한 종교들도 이 길을 통해 건너왔다. 천문학, 지리학, 수학도 이 길을 타고 전파되었다. 중국에서는 나침반, 인쇄술, 화약이 유럽으로 건너갔다. 실크로드는 동서 간 문명 교류의 대동맥이었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 사용했지만, 길의 역사는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장구하다. 처음으로 실크로드를 개척한 이는 한 무제의 신하 장건(張騫)이다. 한나라의 전성기를 열었던 무제의 큰 업적은 중원을 끊임없이 넘보던 흉노족을 정벌한 것이다. 이 정복 사업의 과정에서 기대 밖의 소득을 올리는데, 바로 서역과의 교역로를 확보한 것이다.

 

한 무제는 흉노 원정에 앞서 원군을 얻기 위해 중앙아시아로 사신 장건을 보냈다. 장건은 중간에 흉노족에 붙들려 10년간 포로 생활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 가며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대월지국(박트리아)까지 다녀왔다. 기원전 138년경의 일이다. 장건은 이후에도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 해당하는 대완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는 등 도합 네 차례나 서역 탐사를 했다고 한다. 이때 장건이 처음으로 다녔던 교통로가 훗날의 실크로드가 된다.

이 길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그 후로 500여 년이 지나 당나라 태종 때의 일이다. 당 태종은 북방과 서방의 이민족들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까지 영토를 넓혔고, 자연스럽게 서역의 국가들과 교역을 하게 되었다.

당의 수도 장안은 당시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가 되었다. 색목인(色目人)이라고 불리는 서역인들이 붐볐고, 거리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실크로드를 지나온 이들이었다. 손오공이 등장하는 고전 서유기는 이 당시 승려 현장(삼장법사라고도 한다)이 서역에서 불경을 얻어 온 일을 판타지로 엮어낸 것이다.>다음백과,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박영흠.

 

늘 막연한 얘기 속에 등장하는 실크로드를 내가 직접 가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실크로드는 내가 여행을 하고 싶은 곳으로 항상 마음속에 들어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갈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가까운 선생님 몇 분과 얘기가 돼서 정말 여행을 떠나게 된 거였다.

 

같이 가려고 계획을 했던 분 중에 몇 분이 부득이하게 가지 못했는데 제일 아쉽게 생각이 되는 분이 언재 선생님이셨다. 당신께서도 몸이 약간 좋지 않아서 망설이던 중에 따님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돼서 가지 못하신 것이다. 여행은 어디를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와 같이 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여행을 같이 가기 위해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얘기를 나눴던 분들이 같이 못해서 많이 서운했다.

 

 

816일 토요일. 맑음.

 

오늘 실크로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오전이 아니고 저녁 시간이어서 낮까지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아침에 나가서 가보카메라에 들러, 삼각대 케이스를 바꾸고 남대문시장 마운틴에 들러서 물병을 얻어가자고 왔다.

점심을 먹고는 짐을 정리해서 집에서 네 시 반에 나갔다. 공항리무진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승합차가 와서 버스비만 내고 인천공항까지 가자고 해서 그 승합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너무 일찍 도착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리 준비해준 유인물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금방 시간이 가서 열두 명이 다 모였다. 우리 학교에서 우산 선생님, 신해, 용범, 오황, 기성, 상원, 국인, 그리고 나까지 해서 여덟 명이고, 퇴직교수이신 안병* 선생, 퇴직교사이신 *운기 선생부부, 회사원인 홍*기 씨 등 해서 모두 열두 명이었다.

 

밤 여덟 시 반에 출발하는 우르무치행 대한항공 비행기는 150명 남짓 탈 수 있는 중형 비행기였고, 우리 말고는 노란풍선이라는 팀 20여 명이 있고, ‘투어 2000’이라는 팀 하나가 더 있는 단체손님이 주였다.

 

우르무치공항에 내리니 거기 시간으로 한 시 반 정도였는데 우르무치에서 썩 괜찮은 호텔인 우르무치온천호텔에 들어갔다. 현지가이드로 나온 사람은 강석철이라는 조선족 교포였는데 전직교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