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2022. 8. 21. 08:20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악(惡)”은 ‘못되고 나빠서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남’을 뜻하는 말로 나와 있지만 이렇게만 얘기하기엔 너무 많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은 ‘좁게는 인간의 의지·태도·행위가 도덕적 규범에 어긋남을 뜻하며, 넓게는 사물이나 행위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반대될 경우에 적용되는 말‘로 쓰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반대될 경우에 이 말을 쓴다고 보면 좋을 겁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악인이 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은 선인이 될 것인데 자신 스스로 자기를 악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찿기 힘들 것 같습니다.

 

추 아무개가 여당대표 시절에 그 아들이 군에서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추와 그 추종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신들을 옹호하고 그 사건을 유야무야 뭉갰을 때, 그들이 보는 눈에는 그게 ‘선(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그것을 ‘악(惡)’으로 규정했을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추 아무개가 ‘악의 평범성’을 떠벌리고 있지만 그것 참 황당한 소리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서 '악'이란 개념을 쉽게 그릴 수 있지만 워낙 악이라 부를 만한 사례가 많고, 또 누군가에겐 악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악이 아닌 경우도 많아 딱히 표현하기는 힘들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하면 선이고 남이 하면 악이라는 이런 2분법적 판단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인이라는 생각입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건강상 사유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악이 판치는 절망의 세상이 되었다”라고 20일 비판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력자들은 자유·공정·법치를 외치면서 정작 정치 사회적으로 찍힌 사람에게만 유독 지독하게 이지메하듯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일찌감치 거리를 둔 야당과 사회 지성은 침묵하고 묵인함으로써 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라며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정경심 교수에 대해 검찰은 형 집행 정지를 불허해 인권유린을 서슴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도 언급하며 “바로 다음날은 국민대 교수회가 투표까지 하고도 복붙 표절 논문을 재검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며 “교수회가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고 침묵하기로 결의한 셈인데 그럴 거면 뭐 하러 투표를 한다고 호들갑한 것인지 앞뒤가 도무지 맞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또 “검사나 대학교수로 이 사회의 특권을 누리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 국민이 느끼는 법 감정을 무시하고 특권적 행동을 당연시 여기며 밀어붙이는 일이 매일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며 “그리고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악의 평범성’으로 소름 돋게 한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정경심 교수의 문제는 대학 입시의 문제였다면 복붙 논문은 가짜 박사와 가짜 교수 신분에 관한 문제이니 죄질이 훨씬 다른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정경심 교수의 집행정지 불허 결정에는 지성이 침묵하고 복붙 논문은 집단지성의 이름으로 추인해 주는 ‘악의 평범성’에 너무도 참혹하여 절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18일 오후 2시 박기동 3차장검사 주재로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를 연 후 정 전 교수의 형집행정지를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심의위는 정 전 교수가 제출한 자료, 현장 조사 결과, 의료자문위원들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현 단계에서는 형집행정지가 불가한 것으로 의결했다.

 

정 전 교수는 딸 조민씨의 허위 스펙 의혹과 사모펀드 관련 혐의로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정 전 교수 측은 이달 1일 “디스크 파열 및 협착, 하지마비에 대한 신속한 수술 등이 필요하다”며 서울중앙지검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정 전 교수는 올해 6∼7월께 구치소 안에서 여러 차례 낙상 사고를 겪었고, 지난달 22일 재판이 종료된 뒤 검사를 받은 결과 디스크가 파열돼 신속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료진 권고를 받았다.>세계일보. 정은나리 기자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변호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검찰이 판단하는 것은 늘 상반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검찰 측에서도 전문 의료진을 동원했을 것이고 그들의 조언을 참고했을 것입니다. 단지 전 정권의 사람들이라 가혹하다는 말을 전 정권 사람들이 자주 하는데 그게 정말 근거가 있는 얘기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기적 행위와 이타적 행위를 손쉽게 악과 선으로 분류할 수도 없거니와, 설령 개인의 이기심 추구를 악이요, 이타적 행위를 선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이기심 추구를 악이라고만 규정하는 것도 억지일 겁니다. 법무부장관의 자리에 앉았으니 검찰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선무당의 춤을 출 적에 그를 악으로면 몰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했던 일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악의 평범성’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정권을 잃은 뒤에는 모든 것이 다 억울하다고 얘기를 하면 정권과 거리가 먼 국민들이 쓴웃음만 짓게 됩니다.

 

뻔뻔스러워도 너무 뻔뻔스런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참 복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