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의 추억

2023. 1. 18. 06:23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제가 토정비결(土亭秘訣)은 본 것은 고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70년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는 월간지 12월를 사면 토정비결이 부록으로 따라 왔고, 그걸 간편하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어 굳이 점집이나 사주 등을 봐주는 분을 찾아가지 않고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더 어렸던 시절에는 동네에 한문을 아시는 분을 찾아가서 토정비결을 봤습니다. 애들이 그런 것을 보는 것은 아니고 동네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정초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차례로 토정비결을 보던 모습이 아련히 남아 있습니다.

 

그게 예전에는 설 명절의 한 풍속도였는데 1990년대 이후에는 급속히 사라지더니 지금은 정월 초에 토정비결을 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토정비결은 보지 않아도 결혼하기 전에 사주를 본다는 얘기는 지금도 남아 있을 겁니다. 솔직히 우리 아이 결혼할 때는 사주단자를 쓰지 않았지만 지금도 사주를 본다거나 궁합을 본다는 사람들은 있을 겁니다.

 

디지털 시대에 무슨 사주, 궁합이냐고 웃는 분들도 많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얼굴을 보지 않고 사주와 궁합만 보고 결혼했어도 이혼하는 부부가 극히 적었습니다. 요즘 누가 그런 것을 따지냐고 하지만 그런 것을 무시하면서 이혼율도 훨씬 높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됐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은 한 해의 운세를 점()치는 대명사였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로 그해 운세를 보는 것은 조선시대부터 민간에 퍼져 있던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토정비결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의 저작이지만, 일부에서는 그의 이름을 가탁(假託)한 책이라는 설도 제기한다.

 

이지함은 목은(牧隱) 이색의 6대손으로 한때 서경덕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는 관직에 전혀 뜻을 두지 않고 은둔과 기행 그리고 유랑하면서 지냈다. 그의 이런 행적은 조선시대 도가적 행적을 보인 인물들을 기록한 '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소개될 정도다. 그는 물욕이 없어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면서도, 천문·지리·의약·복서(卜筮) 등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포 강변에 토실(土室)을 지어 놓고 밤에는 그곳에서 자고 낮에는 그 위를 거닐면서 정자 삼아 지냈다고 한다. 토정(土亭)이란 그의 호()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지함은 60세 가까이 돼서야 특채돼 포천·아산 현감을 지냈다.

 

토정비결은 일 년의 운세를 판단하는 술서(術書)이다. 주역(周易)에 능통했다던 이지함은 토정비결을 주역의 괘()로써 풀이하면서도 차별화를 시도했다.

 

먼저 주역의 괘는 육십사괘이나 토정비결은 사십팔괘로 십육괘가 적다. 또 주역은 하나의 괘에 본상(本象)이 하나, 변상(變象)이 여섯, 총 일곱 상으로 사백이십사 개의 괘상(卦象)이나, 토정비결은 백사십사 괘상으로 이뤄졌다. 괘를 만드는 방법도 연월일시(年月日時)에서 시()가 제외돼 사주(四柱)가 아니라 삼주(三柱)가 된다.

 

토정비결은 다른 점서(占書)와 마찬가지로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 많다. 예를 들면, '북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으니 귀한 아들을 낳으리라'는 등이다.

 

또 토정비결은 남성 본위로 여성 경시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토정비결에 여성에 관한 괘() '처녀이면 시집갈 괘' 하나밖에 없다. 오히려 '여색을 가까이하면 구설이 생긴다'는 식의 여성을 경계하는 표현이 많다. 남성 중심의 조선시대 사회상을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지함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배려했다. 전체 괘의 70% 이상이 좋은 운세를 예고한다. 나쁜 운이 나올 확률은 다섯 명에 한 명꼴이다.

 

설령 사나운 운수가 나오더라도 끝은 희망적이다. '선길후흉(先吉後凶) 노이유공(勞而有功), 제사가신(諸事可愼) 종시유길(終始有吉)'처럼 '처음은 길하고 후가 나쁘나 힘써 임하면 공이 있다. 모든 일에 조심하면 끝내는 좋은 일이 생긴다' 등이다.

 

토정비결은 여러모로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인다. 또한 '칠팔월에 물가를 조심하라'는 등의 '믿거나 말거나'식의 당연한 조언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해석과 예측이 그 시대에 머물러 있어 흐름에는 확실히 뒤처져 있다.

 

그럼에도 토정비결이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고 장수한 비결은 다양하다. 우선 토정비결은 사언시구(四言詩句)로 이뤄지고 그 밑에 한 줄로 번역돼 있어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 또 괘를 찾는 방법이 체계적으로 표준화돼 있어 누구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토정비결은 주역과 마찬가지로 풀이가 은유적으로 돼 있어 그 해석의 과정이 묘미가 있으며 그 누구도 쉽게 전문가 행세가 가능하다. 특히 어려운 생활을 하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사람들에게 친근감과 위안을 준다. 토정비결이 인생의 지침서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해 운세를 보는 것은 일 년의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지혜가 배어 있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전통 점서인 토정비결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이 든다.>한국일보. 전형일 명리학자·철학박사

 

  저는 지금까지 점집을 찾아 본 적은 없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손금을 보러 갔던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것도 음력 정초였는데 제가 살던 곳에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산 너머라는 곳에 손금을 잘 보기로 유명한 분이 있어서 갔었습니다. 그때 1만원의 거금을 주고 손금을 봤을 겁니다.

 

오늘날 누가 점을 치고, 손금을 보느냐고 하겠지만 그쪽 사업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점이나 손금이 제대로 맞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심심풀이로 가서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토정비결에 관한 기사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토정비결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니 저도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맞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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