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적인 판결

2023. 2. 15. 06:13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이른바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은 한국 사회, 특히 공직자를 옥죄곤 했다. 밥 한 끼 먹을 때도, 장례식에 갈 때도, 명절 선물도 눈치를 봐야 했다. 특히 100만 원 이상 금품이면 직무 관련이나 대가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했다.

 

대한민국이 경찰국가냐는 반발에도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대의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법이 아무리 냉혹해도 세상엔 온기를 심으려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곽상도 아들 50억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이준철 부장판사).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는 화천대유에서 510개월간 근무했다. 퇴직 당시 연봉 4000만 여원의 대리였다. 이런 근속연수면 통상 2200만 여원의 퇴직금을 받지만 병채씨는 그보다 200배가 넘는 50억 원을 받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던 곽 전 의원은 대장동 사건이 불거질 즈음 국민의힘 부동산 투기 특별조사위원이었다. 직무연관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영학 녹취록엔 김만배씨가 병채 아버지가 돈을 달라고 그래. 병채 통해서라거나 병채가 아버지에게 주기로 한 돈을 달라고 해서 머리 아프다고 말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 정도면 누구나 병채씨 퇴직금 50억 원이 아버지 곽 전 의원을 보고 준 뇌물이라고 여기겠지만, 법리(法理)에 투철한 재판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병채씨가) 성인으로 결혼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했다는 논거가 결정적이었다.

 

이번 판결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다. 대중 권력에 휘둘리지 않은 용기의 소산이요,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 첫 번째가 앞에서 말한 김영란법으로 위축된 사회 전반에 활력을 주겠다는 취지다. 두 번째는 획기적인 저출산 타개책이다. 이만한 자식 찬스가 어디 있나. 이제 나는 100만원을 받아도 감옥행이지만 내 자식은 남에게 50억 원을 받든 100억 원을 받든 문제가 안 된다. 상속세도 없다. 단 결혼하거나 따로 살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아니면 조민씨처럼 장학금 600만원을 받아도 유죄가 된다.

 

세 번째가 가장 의미 있다. 탈근대화다. 한국 사회엔 여전히 유교적 폐습이 잔존해 자식이 부모를 섬기거나 부모가 자식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팽배하다. 그래서 아들 돈=아버지 돈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결혼해 독립하면 부자지간(父子之間)이라도 사실상 타인이라는 이번 판결로 구시대적 가족 문화도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아쉬운 점은 이런 역사적인 판결이 다소 늦게 나왔다는 점이다. 조금만 빨랐어도 한국 현대사의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조카사위 등 노 전 대통령 일가가 64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2009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결혼한 자식이 남인데 조카사위라면 생판 모르는 사이 아닌가.

 

더 억울한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본인 자식이 아니라 측근(최서원)의 자식(정유라), 그것도 말이 아니라 말 관리비를 대기업에서 후원받았다고 구속됐다. 이때 등장한 논리가 그 유명한 경제공동체 묵시적 청탁이다. 50억 원 무죄 판결이 일찍이 판례로 자리 잡았다면 전직 대통령 자살이나 현직 대통령 탄핵과 같은 시대적 아픔을 피했을지 모른다.

 

생뚱맞은 건 민주당이다. 50억 원 무죄 판결을 맹비난하고 있다. 이번 판결 기조가 흔들리면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이나 성남FC 사건에 악영향을 끼칠 텐데 말이다. 게다가 50억 원 무죄 재판부는 대장동 사건 1심도 맡고 있다.

 

호사가들 사이엔 ‘50억 원 무죄는 이재명 무죄를 위한 밑밥 깔기라는 소리도 있지만, 이는 시대를 앞서간 재판부의 안목을 모욕하는 언사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되며, 억울한 정치 지도자를 막으려는 사법부의 고뇌를 외면할 것인가. 민주당은 자중자애해야 한다.>중앙일보. 최민우 정치부장

출처 : 중앙일보. [최민우의 시시각각]기념비적인 '50억 무죄 판결'

 

 

<평소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비판을 삼가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보호받아야 하고, 3심제가 원칙인 만큼 1심 판결이 이상해도 상급심에서 바로잡힌다는 판단에서다. 가뜩이나 좌우 진영 싸움이 극에 달해 있는데 갈등 해결의 최후 보루인 판결까지 헤적대면 나라가 온통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국민 법 감정과 상식에 비춰 너무 동떨어진 판결까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주 석연찮은 판결이 그렇다. 대장동 ‘50억 클럽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대부분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공정에 민감한 MZ세대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피해자 후원금 횡령  8개 혐의를 받는 윤미향 의원(무소속)의 벌금형 선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법조계에서도 납득하기 힘든 판결이란 반응이 봇물을 이룬다.

 

독립한 아들에게 준 퇴직금 50억은 뇌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은 압권이다. 화천대유에서 6년 근무한 곽 전 의원 아들(31) 2021년 퇴직금·성과급 명목으로 무려 50억원을 받았다. 화천대유 다른 직원 퇴직금을 다 합해도 몇 억 원 정도란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실세 국회의원의 아들이 아니라면 그토록 엄청난 돈을 받았겠나. 검찰의 부실 수사 탓이 크지만 판사가 법리를 너무 소극적으로 적용한 건 실망스럽다.

 

윤 의원에 대한 선고도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횡령액 1억 원 중 1700만원만 인정하고 준사기 등 나머지 7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죄질에 비해서도 그렇고 업무상 횡령의 다른 사건 경우로 봐도 지나치게 가볍고 관대한 판결이다. 게다가 법원은 기소 후 무려 2 5개월이나 재판을 질질 끌었다.

 

법원이 정의와 법치의 마지막 보루인지 회의가 든다. “요즘 판·검사는 정의의 수호자라기보다 샐러리맨이 돼버렸다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일침은 정곡을 찌른다. 두 사건 항소심에서 양형이 바로잡히는지 예의 주시할 것이다.

 

법원은 연일 어수선하다. 현직 법관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재판 지연에 대한 비판이 잇따라서다.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대법관 인선에 대법원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2018년 김 대법원장은 대법관 추천위원회 규칙에서 대법원장의 후보 추천권 규정을 삭제했다. 대법관을 추천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뒤에서 압력을 넣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침묵하고 있다.

 

특허법원 고법 판사의 언론 기고문 파장도 크다. 그는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재판 지연이 심해진 것을 근거로 들며 좋은 재판은 실패했다. 실패의 정도는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다고 직격했다.

 

장기 미제(재판 기간 2년 초과) 사건이 2배 이상 늘었고, 판사들이 어려운 사건은 뒤로 미루고 쉬운 사건 위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재판 지연의 요인이 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때 “315개월 동안 재판만 해 온 사람의 수준을 보여주겠다 좋은 재판을 기조로 내세웠다. 올해 시무식 때도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해 좋은 법원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연구관·고법 판사 등 엘리트 판사들이 무더기로 옷을 벗고, 판사들마저 야근을 기피한다. 좋은 재판을 받을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 “재임 6년 동안 코드 인사, 거짓말 말고 뭘했는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나오는 이유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으로 인해 사법 불신이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법원이 얼마 전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에 검사나 피의자 및 변호인 등을 심문하겠다며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도 미심쩍다. 민감한 시기에 검찰 수사 무력화를 노린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오는 9월이면 대법원장 임기가 끝난다. 남은 기간이라도 진보 진영의 이해만 대변한다는 뒷말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세계일보.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세계일보. [채희창 칼럼] 사법부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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