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7. 06:01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외교(外交)”는 ‘자기 나라의 대외 정책을 실현하고 나라 사이에 생기는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사전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다른 나라와 공존하기 위해 외교는 필수적이지만, 각자의 국익이 달린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일이고 나라와 나라사이에 직간접의 줄다리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기전 333년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때 ‘7웅(七雄)간의 외교정책으로 “합종연횡(合從)連橫)”이 제기되었는데 소진과 장의라는 탁월한 외교관들이 등장해서 이를 이끕니다. 나라와 나라사이에 어떤 손해도 안 보고 이익만 얻을 수 있는 외교정책은 없을 것입니다. 한 때 손해가 되더라도 그게 장래 이익이 된다면 돌을 던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에 따른 용기도 필요합니다.
<9년 전 베트남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하노이를 방문했다.
학술대회를 마치고 투어가 있었는데 필자를 초청한 사회과학원 교수 주선으로 월남전 당시 한국군 작전 과정에서 베트콩으로 오인돼 일가족이 사살되고 자신은 한쪽 다리를 잃은 한 남자를 면담하게 됐다. 필자가 그에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죄한다고 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 “과거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
그 순간 ‘아, 베트남 국민은 참으로 현명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국부 호찌민의 실용주의 정신을 계승한 베트남 공산당 지도자들은 국익을 위해 과거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과 한국에 대해 화해하고 협력해 왔다.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구한 베트남은 미국과 한국의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교역을 확대해 왔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외국인투자 국가이고 3위 수출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였지만 이제는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북핵 위협을 비롯해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선언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돼온 우호 협력관계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에 기초해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고 결의했다.
윤석열정부의 한·일 관계 정책은 박정희 대통령 결단으로 체결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이래 획기적인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기초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 선언에 기초해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듯이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에서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강제징용 피해 배상의 제3자 변제 해법이란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윤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결단’이라고 자평했다.
이를 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치욕’, 민주당은 ‘친일 본색’ ‘굴욕 외교’라고 맹비난했다. 국민의힘은 ‘미래와 국익을 위한 대승적 결단’으로 환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획기적인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즉각 환영했다.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EU)도 적극 환영했다.
필자는 대구에서 2월 28일 개최된 3·1절 전야 행사 인사말에서 “과거를 잊지 말자. 그러나 묻지 말자. 3·1운동 정신인 자주독립과 자유발전을 위해 북핵 위협이 고조되고 중국의 팽창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지금의 동북아 국제 정세에서 한·미동맹의 공고화와 한·미·일 협력 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과거를 묻지 말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정립하자”고 역설했다. 따라서 필자는 다음 날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발언에 적극 공감했다.
돌이켜보면 강제징용 배상 관련 논란은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됐다. 2012년 외교 문제에 대한 사법 자제의 원칙에 위배되고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을 내린 대법원에 이은 2018년 김명수 대법원의 무모한 판결 때문에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문재인정부는 이런 사법부의 오류를 시정하기는커녕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 감정을 부추겼다. 그 결과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통보로 나타났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강화돼온 한·일 우호관계가 일거에 악화됐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파괴적 결단’을 내렸다. 1965년 한일협정 때 ‘국익을 위해서는 원수와도 손잡아야 한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은 원수였지만 지금 민주주의 일본은 더 이상 원수가 아니다. 교역과 문화교류 면에서 서로 긴밀한 협력자가 됐다. 더구나 이제 우리 국력도 일본과 대등할 정도로 신장했다.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표현대로 지금 세계는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간 선택에 직면해 있다. 동북아에서 북한과 러시아와 중국이 속한 전제주의 진영에 대응해 민주주의 진영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강고한 동맹에 기초해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대해 과거를 잊지 않되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국민일보. 김형기(경북대 명예교수·경제통상학부)
출처 : 국민일보. “과거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
<외교가 원로들 사이에 1983년은 ‘악몽의 해’로 기억된다.
그해 9월1일 뉴욕을 떠나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박살 나 추락했다. 소련(현 러시아)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았다.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소련은 “적군 정찰기인 줄 알았다”며 발뺌했다. 그런 소련을 미국은 ‘악의 제국’으로 규정했다. 우리는 우방은 물론 중립국들의 소련 성토까지 이끌어내고자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1개월여 뒤인 10월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 나라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겨냥한 북한의 폭거였다. 이범석 외교부 장관 등 대통령 수행원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럽의 한 대사관에 근무한 어느 외교관은 훗날 회고록에서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도 없이 또다시 지난번 대한항공 사건 때와 똑같은 교섭을 되풀이해야만 했다”며 “소련 대신 북한이 규탄의 대상이 된 것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19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소련 대표팀을 맞는 우리 국민의 환영은 뜨거웠다. 미국 대 소련 시합에서 ‘올림픽 소련 선수단’이란 뜻의 URS를 연호하며 소련을 응원하는 한국인도 눈에 띄었다. 반미 감정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외신은 “서울 한복판에서 USA(미국) 대신 URS가 울려 퍼졌다”며 신기해했다. 그 소련이 머지않아 지도에서 사라질 운명임을 안 이는 몇이나 됐을까.
10년 뒤인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외쳤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도 했다. 6·25 남침부터 아웅산 테러까지 북한이 우리에게 안긴 것이라곤 고통과 비극뿐인데 뭐가 ‘행복’이란 말인가.
돌아보면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으로 ‘한반도도 곧 통일될 것’이란 낙관론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정작 북한은 무력 강화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돌입했는데도 말이다. ‘동맹보다 민족’이란 사고는 이후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끼쳤다.
아웅산 테러에 관해 북한은 이제껏 한국에 어떠한 사죄도 하지 않았다.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에 대해 소련은 한·소 수교 직후인 1990년 12월에야 유감의 뜻을 표했다. 당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교장관이 우리 최호중 외교장관에게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과거를 묻어버리고 밝은 앞날을 향해서 새 출발을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소련의 공식 사과로 받아들였다. 진정성이 있네 없네 하는 시비조차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두고두고 욕하면서 공산 국가들의 살인 만행은 쉽게 잊거나 눈감아 온 것이 우리 현실이다.
지난달 미국 하원이 ‘사회주의 참상 규탄 결의안’을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점과 뚜렷이 대비된다. 결의안은 “사회주의는 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반복되는 기아와 대량 살상을 초래했다”며 김정일, 김정은 등을 주요 범죄자 명단에 올렸다.
1983년 이후 40년 세월이 흘렀다. 소련의 후예 러시아는 이웃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참혹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민항기에 거리낌 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던 때의 잔인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북한은 이제 우리 정부 요인 몇 명을 제거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5000만 국민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미사일을 움켜쥔 채 “태평양을 사격장으로 쓰겠다”고 강변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국가나 집단도 그 본성은 좀처럼 변하기 힘든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그리고 한·미 정상회담에 잇따라 나선다. 가장 중요한 의제는 역시 ‘안보’다. 북한처럼 지역의 평화·안정을 해치는 세력에 맞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튼튼히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40년 전 공산주의자들의 끔찍한 범행에 희생된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 탑승자 269명 그리고 아웅산 테러 순국 인사 17명의 명복을 빈다.>세계일보. 김태훈 외교안보부장
출처 : 세계일보. [데스크의눈] 40년이 지났어도 바뀐 것 없는 가해자들
과거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확실한 처리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한 일은 다 쉽게 잊어버리고 남이 한 일만 기억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북한 김정은이가 언제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때의 일을 우리 국민이나 정부에게 사과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그냥 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고는 정권을 잃으면 언제 그랬냐는 식의 얘기는 씁쓸합니다.
지금 여당이 야당이 될 날이 있고, 야당이 여당이 될 날도 있을 것인데 그렇게 오늘 당장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안면몰수하고 덤비는 일들은 지양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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