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2023. 8. 22. 06:14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아득한 유년 시절 내게 가장 아쉬운 사건은 월남전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정치나 이념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시절 나는 커서 해병대 장교로 월남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그래서 동네 꼬마 친구들에게 커서 청룡부대 지휘관으로 전장에 나갈 것이라고 뻥을 쳤다.

 

실제로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날더러 교수보다 군인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사관학교에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곰곰 생각해 보니 내 본능 속에 매스컬니즘 또는 마초이즘이 상당한 것으로 짐작된다그리고 군대에 대해서 뭣도 모르던 어린 나이에도 유독 해병을 동경했다.

 

사실 영화도 지옥의 묵시록이나 디어 헌터’, ‘플래툰’,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등 전쟁영화를 좋아한다고백하건대 나는 전쟁영화를 통해 남자만의 그 무엇을 배웠다그래서 가끔 아들을 꼬드겨서 같이 전쟁영화를 보기도 한다.

 

특히 미 해병이른바 ‘US 머린이 등장하는 영화는 웬만하면 놓치지 않고 본다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전쟁폭력 영화를 좋아하는 심각한 사람쯤으로 뜨악해한다하지만 예를 든 영화는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월남전은 끝났고 철없던 사내아이의 꿈도 사라졌다사관학교 꿈을 접고 일반 대학으로 진학했다화염병과 최루탄 속에 양키 고 홈을 외치던 대학 시절 비로소 월남전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그리고 세월이 흘렀다해병 장교의 꿈은 추억으로 퇴색된 지 오래다.

 

그런 내가 놀란 것은 오늘날 신세대들의 군에 대한 생각이었다연전에 학생회장 선거에 나선 후보의 선거 유인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포스터에 해병 ○○○기 전역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해병대 출신이라고 밝혀 놓으면 일단 엄청난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고 학생들이 설명한다. MZ세대에게특히 여학생들에게 해병대가 상당한 인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해병의 죽음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훈 전 수사단장도 옳다고 보고국방부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측 대응도 이해가 간다.

 

생때같은 병사를 죽게 한 최종 책임은 사단장에게 있다는 주장도 수긍이 간다그러면서 사단장까지 책임을 지우는 것은 지나치다는 국방부의 시각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박 대령이 조금 서툴렀다. “억울함과 국방부의 외압을 알리려고 공영방송에 출연했다는 주장은 너무 나갔다현역 군인이 억울하다고 방송에 출연해 맞서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진영 논리에 빠진 지금의 KBS를 공영방송으로 보긴 어렵지 않을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징계가 가장 가벼운 견책에 그친 것은 불행 중 다행아마 언론 메커니즘에 서툰 현역 군인의 상황을 많이 고려한 징계위의 배려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악용하려는 정치꾼들의 행태다민주화 투사라고 충동질하며 군을 이간시키려는 추악한 군상들이 보이기 때문이다오죽하면 박 대령이 자신의 정계 진출설에 대해 정치는 모른다알고 싶지도 않다고 잘랐을까.

 

그는 시작도 그러했고지금도앞으로도 군인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나는 스스로 충성·정의·의리밖에 모르는 바보 군인이라고 한 박 대령의 말을 믿는다따라서 군 수뇌부도 이쯤에서 물러설 곳이 없는 박 대령을 그만 몰아붙이면 좋겠다.

 

나는 오늘 우직하면서 조금 서툰 한 해병 장교가 처한 어려움을 보면서 철부지 어린 시절 동네 꼬마들과 목청껏 불렀던 해병군가를 가만히 불러 본다.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 맞다대한민국 해병대오천만의 자랑이다.>서울신문김동률 서강대 교수

 

  출처 서울신문오피니언, [김동률의 아포리즘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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