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 07:12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이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 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김남조. 1971년「설일(雪日)」
※-이적진 : 이적지는, ‘이적지’는 ‘이제까지’의 방언
김남조 선생님이 2023년 10월 10일에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 시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바로 「설일(雪日)」입니다.
늦었지만 선생님의 명복을 빌면서,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정말 너그럽게 세상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시작합니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신년 인사를 입에 달고 산다.
누군가 만날 때마다 주거니 받거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문자 메시지나 모바일 메신저에서도 이 시즌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복(福)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새해 표 많이 받으세요’(정계) ‘새해 복 많이 당기세요’(금융업계), ‘새해 복 많이 잡수세요’(외식업계), ‘새해 북(book) 많이 받으세요’(출판계). 분야마다 방점이 찍히는 자리가 제각각이다.
최근에 출간된 ‘사진으로 읽는 군인 백선엽’의 책장을 넘기다 203쪽에서 눈길이 붙잡혔다. 포격으로 황량해진 민둥산을 배경으로 미군들이 새해 인사를 하는 사진이었다.
6·25에 참전 중인 군인 11명이 큰 글자를 적은 종이를 든 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글자를 이어 붙이면 Happy New Year from Korea 1952. 그 흑백사진 옆에 ‘1951년 12월 14일 강원 금성 지구에 모인 미국 미주리주 출신 병사들이 새해 인사가 적힌 글자판을 들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세 가지가 특별했다. 내일의 생사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새해 인사를 한다는 점이 그랬다. 사진에서 ‘나는 이렇게 건강하니 안심하세요. 내년엔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라는 열망이 묻어났다.
둘째, 다들 밝은 표정인데 ‘Happy’ 글자판을 든 병사만 불행해 보였다. 집단이 한 가지 목표로 뭉쳐 있더라도 어떤 구성원은 비관하고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는 사례였다.
마지막으로, 70여 년이 지난 그 새해 인사가 지금 여기에도 어떤 울림을 준다는 게 흥미로웠다.
한국이라는 땅, 한미 동맹 70년, 새해라는 발명품이 전쟁 속 그들과 평화 속 우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출발점이던 저 폐허, 헌신과 희생, 삶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뒤섞였다.
무사히 귀국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생존해 있다면 모두 아흔 살이 넘었을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그들에게 새해 인사를 띄운다. Happy New Year from Korea 2024.>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출처 : 조선일보. 사회면 아무튼 주말, 70년 전 새해 인사
오늘 가깝게 지내고 있는 어르신들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더러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 말이 무척 쑥스럽습니다. 그래도 ‘새해에는 더욱 더 건강하시고 평안한 날들 되시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후배들과 예전 졸업생 80여 명에게 송구영신 문자를 보냈습니다. 역시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다들 건강하고 아프지 말고 좋은 일만 가득하라고 했습니다.
70년 전의 사진 속의 군인들께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은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뿐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와 소통하시는 모든 분들께 드리는 새해 인사는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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