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죽자는 ‘먹방’

2024. 2. 13. 08:21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차력(借力)은 목숨을 건 묘기다.

 

공업용 철근을 목으로 눌러 구부리거나 트럭에 묶은 밧줄을 입에 물고 끌어당기는 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대단한 무공이 필요하다이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도 북한이나 동남아 전통 시장 같은 곳에서는 차력쇼가 열린다.

 

몇 년 전 태국에서 불붙은 꼬챙이를 입으로 삼키는 남자를 봤다내 목구멍이 다 얼얼해지는 장관이었다어릴 적 기억에 그들은 대개 약장수들과 함께하곤 했다물론 눈속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그래도 쇼가 시작되기 전 애들은 가를 반복하던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따라 하면 다치니까.

 

작금의 차력쇼는 단연 먹방이다먹는 방송대패 삼겹살 20인분을 혼자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수제 버거 수십 개를 거의 마시듯 식도로 넘기는 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타고난 몸뚱이가 필요하다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이 기현상(‘Mukbang’)의 종주국은 한국이다.

 

이 세계에서는 대식(大食)이 기본이다이를테면 몸무게가 약 48인 유튜버 쯔양은 짜장면 여덟 그릇과 군만두와 콜라 두 병을 예사로 먹어치운다. ‘히밥이라는 예명의 과식 전문가는 라면 스물다섯 봉지를 끓여 먹는다계란에 떡국 떡까지 넣어서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일 터이나계속 그렇게 먹다가는 오래 못 살 것이다.

 

이들의 위대(胃大)한 차력은 소셜미디어로 실시간 전파된다절대로 1인용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대형 솥에 한가득 끓여 비빈 불닭볶음면’ 따위를 배경으로 이들은 구경꾼을 불러 모은다이들은 푸드 파이터라고도 한다음식과 싸운다니먹는다기보다는 그냥 위장에 쑤셔넣는다고 봐야 한다.

 

이런 괴식의 의학적 위험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도저히 소화할 수는 없으니 삼키고 토한 뒤 영상에서 편집하는 방식으로 연명하다 들통 나 업계에서 버림받은 인물도 있고건강이 악화돼 실제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최소한 애들은 가라는 안내 방송은 필요하다.

 

 정부가 한 차례 대책 마련에 나서기는 했다. “폭식 조장 미디어·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할 계획을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했다비만 관리 대책의 하나로영상에 주의 문구 정도를 넣자는 자정 요구였다강제성도 없었다그러나 정부의 식생활 규제라는 비판에 막혀 유의미한 후속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과거 이빨로 캔맥주를 찢어 마시던 왕년의 차력왕 배우 정동남처럼이제 유명 먹방인들은 유튜브를 넘어 지상파 TV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술방까지 치고 들어왔다먹방에 술이 합쳐진 것이다소주를 병째 원샷하는 건 귀여운 수준이다.

 

콧구멍까지 한껏 벌려 미어질 듯 음식을 넣고 우물거려야 먹을 줄 안다고 손뼉 치는 사람이 늘수록 정량(定量)에 대한 예의는 줄고 있다어푸어푸 수영하듯 고갯짓하며 국수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이는 면치기가 유행할수록 대대로 전수돼 온 밥상머리의 품격은 멀어지고 있다

 

19세기 한 프랑스 미식가는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을 설명한다고 했지만이제는 그 설명 방식이 어떻게 먹느냐로 바뀔 시점이 됐다폭식 먹방을 가만 보고 있자면 도리 없이 그들의 배설량을 떠올리게 된다그것은 지독한 비애를 야기한다그 어떤 양분도 되지 못하고 한 무더기 똥이 돼버린 음식처럼우리의 관심이 너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조선일보정상혁 기자

 

  출처 조선일보오피니언 [에스프레소먹고 죽자는 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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