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6. 06:34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선수 개개인의 유불리와 별개로 사전에 정해진 규칙(룰)대로 경쟁하는 것이 스포츠의 기본 전제다.
정치도 선거라는 경기를 통해 경쟁하는 일종의 스포츠다. 그런데 경기 때마다 게임의 룰을 선수가 정하는 거의 유일한 종목이 있으니, 44일 뒤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다.
대통령 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선수가 규칙을 정하진 않는데, 입법부 구성원을 뽑는 총선은 규칙을 정하는 데 있어 선수의 입김이 최대 변수다. 이 때문에 선거 때마다 선수인 여야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바꾸려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경기 직전까지 규칙이 정해지지 않는 희한한 일들이 반복된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선거 65일 전에야 비례대표 선출 방식이 정해졌지만, 그마저도 경기에 참여하는 특정팀 감독(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규칙을 정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에서 핵심 변수인 선거구획정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여야는 선거 41일 전인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획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그때 처리돼도 지각 처리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미 2012년(19대) 총선은 선거 44일 전, 2016년(20대) 총선은 42일 전, 2020년(21대) 총선은 39일 전에야 확정하는 등 국회의 선거구획정 지각 처리는 고질병이다.
공직선거법 24조에는 ‘국회는 국회의원지역구(선거구)를 선거일 1년 전까지 확정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법을 위반하는 일이 반복되는 셈이다. 그러나 선거법에는 24조를 위반했을 때에 책임이나 처벌을 묻는 규정이 없다.
선수가 규칙을 정하는 모순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20대 총선부터 선거구획정위를 국회 산하에서 중앙선관위 산하로 바꿨지만,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나 시·도별 의원정수 등은 여전히 법에 규정된 사안이다 보니 선수(의원)가 규칙 결정권을 갖는 모순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총선 선거구획정 직후 획정위는 “선거구획정 지연은 국민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침해를 초래한다. 다음 총선 전 반드시 확정시한 미준수 시 해결 방안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21대 국회 4년 동안 여야 누구도 선거법 24조를 위반했을 때 벌칙 규정을 담은 법 개정안을 내놓지 않았다.
선거구가 선거 직전에 바뀌더라도 현역의원은 보좌진 9명과 기초의회 의원 등의 지원을 받고, 당원 명부를 통해 문자메시지·전화 등으로 선거운동을 하며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신인이나 도전자들은 그런 대응이 어렵다.
정치자금에서도 신인은 철저히 불리하다. 현역의원은 임기 동안 매년 후원금을 1억5000만원까지 모금할 수 있고, 선거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에 특례 규정이 있다. 반면 의원이 아니면 선거 때 예비후보 등록 후에만 1억5000만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선거구 지각 처리’나 ‘기울어진 정치자금’ 같은 문제는 이미 여러 번 지적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관련 규정이 국회에서 전혀 바뀌지 않는다. 이는 현역의원들이 경쟁자들의 도전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기도하기 때문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결국 정치의 저질화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정치인 스스로 현역 프리미엄이 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다 보니 공천권을 쥔 대통령이나 당대표 눈치만 살피고, 그들을 위한 ‘돌격대장’ ‘호위무사’ 역할에 앞장서는 꼴불견들이 계속 나온다. ‘친박’ ‘친문’에서 ‘친윤’ ‘친명’ 등 권력자에 따라 간판만 바뀔 뿐이다.
이번 총선 공천만 봐도 원내 1당 민주당은 대놓고 ‘친명 공천’을 해서 시끄럽고, ‘정치개혁’을 내세워온 국민의힘에서는 대부분 현역이 무난히 공천을 받으면서 ‘현역 특혜’란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를 바꾸려면 다른 무엇보다 선수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총선의 구조적 특혜부터 손보는 게 첫걸음인데, 이마저 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국민일보. 이종선 정치부 기자
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가라사니, 의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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