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의 정치, 방직공의 정치

2024. 8. 15. 08:05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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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힘이 세다사람을 나락으로 떠밀기도 하고시련을 헤쳐 갈 필생의 힘이 되기도 한다.

 

정치판에도 그 예가 있다더불어민주당 대표 연임을 눈앞에 둔 이재명부산지역 최고득표율로 재선 의원이 된 국민의힘 김미애. 63년생, 69년생인 두 사람은 많은 부분 삶의 궤적이 겹친다학교 대신 공장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주경야독의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다녔고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고정치인이 됐다.

 

부모와 다섯 형제일곱 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내야 했던 가난 속에서 중학교 진학을 접은 이재명은 1981열여덟 살까지 고향 안동의 작은 공장들을 떠돌았다손가락을 다치고 손목이 프레스에 으깨어졌지만 돈도치료도 온전히 못 받았다.

 

그가 긴 어둠에서 벗어나 중앙대 장학생으로 인생의 새 막을 열 무렵포항에선 열네 살 김미애에게 불행이 닥쳤다아버지와 오빠언니가 객지로 떠나 소식조차 가물거리던 때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마저 4년 투병 끝에 그의 곁을 떠났다구룡포 바닷가 외딴집에서 두 해를 홀로 지낸 미애는 결국 고여름 학교를 접고 친구 따라 부산으로 떠났다이재명이 대학 졸업과 함께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성취의 삶에 접어들기 시작한 1986년의 일이다.

 

소년공의 삶 6년이 인간 이재명의 인생 서사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미장센의 성격이 짙다면 김미애의 그늘은 보다 실재적이다부산 방직공장 여공을 거쳐 장사도 해보고 초밥집도 해보고 하다

 

1997년 스물여덟 살 늦은 나이에 동아대 야간학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8년차 변호사 이재명이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하며 한창 주가를 높여 가던 때다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그로부터도 5년 뒤엄마를 잃은 때로부터 20년이 지나서였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훗날 가진 것 없는 사람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이들에게 안겼다그러나 결은 다르다이재명은 많은 인터뷰에서 밝혔듯 약자의 문제를 잘못된 세상에서 찾고 이를 해결할 방책으로 ’, 권력을 택했다일찌감치 편먹기세 불리기에 눈을 떴다성남시장으로 있던 2015년 프레시안 인터뷰다. “구성원 모두가 n분의1로 결정 권한을 갖는 게 아니다다수는 무관심하고관심 있는 소수가 경합해 그중 센 쪽으로 권한이 이동하는 것이고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말도 했다. “지지 않을 싸움만 골라서 하는 편이다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작은 승리를 많이 해야 된다는 생각이다지는 것도 습관이다.” 개딸을 기반으로 도장깨기 하듯 당을 장악한 지금의 이재명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김미애는 힘을 모으는 대신 가진 힘을 나누는 데 공을 들인다. “열심히 살아서 내가 잘 살고그것으로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변호사로 아동·여성을 위한 국선변호를 700여 차례 했고국회의원이 돼선 4년여 동안 줄곧 세비 30% 안팎을 기부한다.

 

결혼 대신 80일 된 영아를 입양해 엄마가 됐고사춘기에 접어든 이 딸이 혹여라도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까 싶어 밤낮 없이 여의도 국회와 지역구 해운대를 출퇴근한다아기들이 버려지는 걸 막으려 보호출산제 입법을 주도해 성사시켰고시행 한 달도 안 돼 100여명의 아기를 구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염원하지만 친윤 초선 48명의 나경원 연판장’ 동참 요구는 뿌리쳤다패거리 정치는 그의 길이 아니다대통령에게 문자로 직언을 보낼지언정 마이크나 SNS를 통한 입정치는 삼간다.

 

힘을 길러 세상 뜯어고치겠다며 이를 갈았던 소년공은 이제 아버지 이재명이 됐다친명 일색 의원들의 결사옹위 속에 나흘 뒤면 일극체제의 최고 존엄에 오른다갖가지 무상 정책을 앞세운 기본사회를 당의 강령에 새로 담는다는데눈에 들어오는 건 그의 절대 권력뿐이다.

 

밥자리김미애 의원이 얕은 한숨을 뱉는다. “요즘은 조금 힘 드네요.” 거대 야당의 벽무력감무료변론의 포만감이 가득했던 부산 변호사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열심히 일해서 잘 살고그 힘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던 그의 소박한 꿈이 힘에 부친다.

 

누구를 위한 권력이고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방직공 소녀가 모두에게 묻는다.>서울신문진경호 논설실장

 

   출처 서울신문오피니언 [진경호 칼럼], 소년공의 정치방직공의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