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7. 05:42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사이를 오가는 언사를 듣고 있자면, 오랜 동지였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이제 사사건건 부딪쳐 생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듯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윤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캠프 출신이나 대통령실 참모 출신을 제외하면 친윤계를 자처하는 의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도 나옵니다.
2027년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권력의 무게 추는 미래로 기울 것인데, 일부 여당 의원은 벌써 지지율 20%대 현직 대통령 대신 정권 재창출을 위한 미래 권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친윤, 친한, 구분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계파 갈등은 대통령실에 사치스러운 얘기일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과 그 참모는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인데, 지금 무슨 생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이 한 대표와 독대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신경전이나 하고 있을 때인지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최근 대통령실 동향을 보면 과연 냉정한 판단을 하는 참모가 남아 있는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야당의 항의를 받을까 봐’라는 이유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대통령이란 오명을 만들었는데, 그 일을 주도한 참모는 다름 아닌 5선 의원 출신 정진석 비서실장이라고 합니다.
다른 참모는 김건희 여사 활동 지원을 위한 제2부속실 설치 지연에 대해 “충분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실이 과연 민심에 제대로 반응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지금 대통령은 사면초가인데도 참모들은 그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은 듣기에 달콤한 말만 취해선 안 될 일이고, 쓰라린 말도 민심에 가깝다면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간은 결코 대통령의 편이 아닙니다.
<1989년 10월 21일 청와대 당정회의. 전날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노태우 대통령이 “방미 성과 홍보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라”며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정권 퇴진 운운하며 악수하는 사진이 신문 톱이고 자신의 미국 의회 연설은 한쪽에 밀린 것을 보니 대통령 할 생각이 없어지더라는 거다.
그러자 노 재상(당시 67세) 강영훈 총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각하께서는 외국에서 밤잠 설치며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데 국내가 그 꼴이어서 송구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준규 민정당 대표도 울먹이며 “연말까지 당이 책임지고 5공 문제를 종결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온 당7역은 당 대표실에서 설렁탕 점심을 하면서 한참을 더 논의했다.
여기까지가 박철언이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쓴 풍경이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남재희(15일 작고)가 ‘시대의 조정자’에 쓴 내용은 좀 다르다. 강 총리가 아주 작은 반정부 데모를 보고하며 흐느껴 울자, 놀란 박준규도 흑흑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상한 장면을 연출하고는 청와대를 나오면서 박준규가 한마디 하더란다. “그 사람 와 우노. 그 사람이 우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체코 원전 외교를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났다.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만찬을 함께 한 윤 대통령이 설마 이런 ‘충성의 분수’를 기대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찬에 앞서 한동훈 대표가 요청한 대통령 독대를 대통령실은 거부했다. 신임 지도부를 격려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지만 웃기는 소리다. 마음만 있으면 따로 독대할 기회는 얼마든지 마련한다.
다른 관계자는 “오늘내일은 대통령과 체코의 시간”이라고 했다. 실제로 만찬에서 주로 말한 사람은 윤 대통령이었고 내용도 거의 원전 얘기였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은 외국에서 일하시는데… 하며 흐느끼는 사람만 없었을 뿐, 시계를 35년 전으로 돌려놓는 후진적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 “독대는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거부한 대통령실은 독대를 제왕의 시혜처럼 생각하는 전근대적 집단 같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돈 봉투와 충성 또는 특혜가 오갔을 때는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동훈을 신뢰할 수 없고, 힘을 실어 주고 싶지 않은 심정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지금이 그리 한가한 시국인가. 대통령은 아프거나 다쳐도 주치의가 있어 걱정 없다. 국힘 의원들은 문자 한 통으로 알음알음 ‘의사 빽’을 찾을 수 있겠지만 보통 국민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명색이 집권당인 국힘은 새 지도부 구성된 지 근 두 달간 뭘 한 게 있다고 국민 혈세로 세비 받고, 소고기 돼지고기 만찬을 대접 받으며 박수 치고 격려까지 받는단 말인가.
그래서 한동훈이 고기 덜 먹는 한이 있어도 대통령 독대를 청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 초대 비서실장으로 ‘독대의 매뉴얼’을 만든 김중권은 “대통령이 독대를 해야 진실 파악도, 사태의 심각성도 빨리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한 인터뷰에서다.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현 국힘) 대표 김무성은 대통령과 독대를 못했던 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최순실 사태가 났을 때 저희 같은 사람을 만나 대화했다면 그 지경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올 초 방송에서 개탄을 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나는 당시 김 대표가 면담이나 통화를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써놨으니 통탄할 일이다.
야권에선 함부로 탄핵을 입에 올리지만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반복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겼어도 구중궁궐은 그대로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 개원식에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 국회 불출석을 건의했다니,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간 형국이다.
심지어 대통령실 수석 출신 국힘 의원은 “영부인은 대통령 국정을 보완하는 자리”라며 “영부인을 깎아내리는 것은 국민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신민(臣民) 같은 소리를 했다. 자칫하다간 대통령 부인 비판은 반(反)국민행위로 처단될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조선시대 왕(王)이 아니다. 포도대장처럼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외친다고 전공의가 벌벌 떨며 제 발로 돌아오지 않는다. 국정수행 긍정률이 달랑 20%(갤럽)인 대통령이면 여유만만 한동훈과 독대를 고려할 때가 아니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윤 대통령은 진작, 한동훈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독대 아니라 더한 것도 마다하지 않고 국정 운영을 위한 협조를 구해야 마땅하다.>동아일보. 김순덕 칼럼니스트yuri@donga.com
출처 : 동아일보. 오피니언 [김순덕 칼럼], 지금이 용산서 고기 만찬 먹고 박수 칠 시국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그제 회동이 김건희 여사 논란과 의정 갈등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아무런 대화 없이 ‘밥만 먹은 만찬’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90분간 진행된 야외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체코 원전 수출 성과 등에 대해 사실상 혼자 얘기하는 분위기였고,한 대표는 인사말도, 건배사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앞서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통령실과 신경전을 벌였던 한 대표는 만찬 뒤 추후 독대 자리를 잡아 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대통령실은 확답을 주지 않았고, 재요청 사실이 곧바로 언론에 보도된 것을 두고 불쾌해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번 만찬에선 “김건희의 ‘김’자도, 의료의 ‘의’자도, 민생의 ‘민’자도 안 나왔다”는 것이 참석자의 전언이라고 합니다.
꼬일 대로 꼬인 국정의 한복판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어렵게 만난 자리가 이렇게 끝났다니 허탈할 뿐입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모른 체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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