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23. 17:21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은 관심이고, 만남이며, 사랑입니다
중여동에서 실시한 중국 고대와 현대 즐기기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예전에 북경에 다녀 올 일이 있어서 3박 4일로 두 번을 갔다 왔는데 여름과 가을에 갔었고 겨울에 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사람이 북경에 가면, 꼭 들르는 코스가 거의 정해져 있다고 하는데 그 중의 한 곳이 만리장성이라고 합니다. 만리가 훨씬 넘는 장성이다보니 중국 변방에서는 여러 곳에서 볼 수가 있지만 북경 주변에서는 팔달령과 여기 거용관이 유명한 곳인가 봅니다.
팔달령을 가든, 거용관을 가든 장성에 가기 전에 식사하는 식당은 한 곳입니다.
놀랍게도 그 식당은 순전히 한국사람들 덕에 큰 돈을 벌고 있습니다. 점심시간 전후에 가면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서 있는데 99%가 한국사람들을 태우는 버스입니다. 한글로 써 붙인 안내문을 보면, 여러 여행사 이름과, 단체 이름, 회사 이름이 있어서 거기서만 보면 중국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날 정도입니다.
제가 먼저 두 번 간 곳은 팔달령이었습니다.
차로 이동하여 곤돌라를 타고서 올라가 걸어올라가는데 더 길고 많이 볼 수 있지만 시계(視界)가 그리 좋지 않아서 먼 곳은 늘 뿌옇게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높은 산을 끼고 있어 장성의 웅장함은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거용관은 차에서 내려서 바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서 많이 올라갈 수가 없어 저는 중간에 내려왔는데 그 가파른 산 자락에 성을 쌓아 놓은 그 노력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올라갈 때도 자꾸 무릎이 닿으려고 해서 힘들었지만 내려올 때는 난간을 잡지 않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만리장성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축조한 건축물로는 가장 길고, 거의 천년이 넘는 세월 속에 계속 이어진 작업이라고 합니다. 진시황이, 그전의 여러 작은 나라가 쌓았던 성을 잇도록 명을 해서 잇기 시작한 것이 명나라 때에 완성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 길다 보니 한 쪽에서는 축성공사가 계속 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허물어지고 했을 것 같습니다.
벽돌로 쌓은 곳도 있고, 돌로 된 곳도 있고, 흙을 반죽하여 틀에 부어 쌓은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을 쌓은 이유는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진시황이 여기에 집착했던 것은 어느 날 꿈에 신선이 예언했다는 '망진자 호야(亡秦者 胡也)' 라는 말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오랑캐 때문에 진나라가 망할까봐 장성 축조에 국력을 다 기울였는데 그 호는 오랑캐가 아니라 막내 아들 호해 때문이었습니다.
성을 쌓기 위해서 정말 수만의 백성이 죽었다고 하는데 성을 쌓다가 죽은 병사와 백성의 숫자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거기서 나온 말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인데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저녁에 사랑을 해도 만리장성을 쌓을 만큼 길다는 뜻으로 얘기가 되지만 중국에서는 성을 쌓을 때에 나온 여러 고사 얘기입니다.
신혼인 부부에게 장성을 쌓기 위해 남편을 호출하는 영장이 왔는데 그 부인이 마침 집으로 찾아온 소금장수를 유혹하여 하룻밤을 자고는 다음날 군사가 왔을 적에 자기 남편인 것처럼 속여서 보냈다는 얘기, 장성을 쌓는 곳으로 남편을 면회간 부인이 거기 관리를 유혹하여 하루 자고는 자기 남편과 옷을 바꿔 입게 하여 몰래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관리가 그 남편으로 오해되어 평생 성을 쌓게 되었다는 얘기,,,, 무척 많은 얘기가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여 쌓은 덕에, 오늘날 세계 각국의 외화를 주워 모으고 있으니 조상이 고생하면 후손들이 그 덕을 보는 것은 만고의 진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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