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9. 10:41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오랜 시간 끌어 온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결심 공판의 말 한 마디가 새삼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어 씁쓸합니다. 시험지를 유출시켜 딸의 성적을 올려주었다는 아버지는 지금 3년 형을 받았고 그 딸 둘에 대한 재판인데 그 한 학생의 말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의 재판은 피고가 반성의 말을 하거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 상당한 감형의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이 재판에서 쌍둥이 자매가 순순히 시험지 유출을 시인하고 자신들이 그걸로 성적을 올린 것을 반성한다면 상당한 감형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쌍둥이 자매는 그걸 택하지 않고 끝까지 죄를 부정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의 결심공판. 모든 심리가 종결된 이날 재판에 참석한 자매 측 변호인 4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각자 최후변론에 나섰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진행된 자매 측의 주장은 결국 "문제 및 답안유출이라는 부정행위는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변호인이 소회를 밝혔듯 사실 이 재판, 쌍둥이 자매 측이 무죄 주장을 고집하기에 호락호락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자매는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2018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아버지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인 현 아무개 씨와 공모해 시험문제와 답안을 유출해 학교의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원래 가정법원으로 송치돼 형사처분을 피할 수 있던 자매도 아버지의 2심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 정식 재판의 필요성이 인정돼 검찰을 거쳐 형사재판의 피고인으로 서게 됐습니다.
먼저 재판에 넘겨졌던 아버지는 딸들과 마찬가지로 재판 내내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1‧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까지 일관되게 부정행위로 판단돼 징역 3년형의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형 확정에 따라 자매 측이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깨알 메모', '풀이과정 없이 답만 적힌 시험지', '이례적인 성적향상', '교사도 틀린 정답 기재' 등 부정행위의 간접 증거들이 아버지의 재판에서 이미 유죄의 증거로 인정된 셈입니다. 결국 자매의 주장은 신빙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런 만큼 아버지의 형이 확정되자 법조계에서는 자매 측이 입장을 바꾸지 않겠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미 상급심에서 확정된 유죄의 증거들을 다투기보다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로 유리한 양형을 이끌어내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자칫 무리하게 무죄 주장을 이어가다가 재판부에게 오히려 반성 없는 뻔뻔한 태도로 비춰지기보다 차라리 재판전략을 수정하면 자매가 미성년자이고 아버지가 이미 수감생활 중인 상황을 고려해볼 때 실형은 피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분석도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자매 측의 입장은 이후에도 굳건했습니다. 입장을 바꾸려고 한다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이날 결심공판에서도 자매나 변호인의 입에서 '반성'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태도변화가 없던 자매에 대해 검찰이 내린 결론은 "뻔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장기 3년‧단기 2년이라는 적지 않은 형량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습니다. 성적이 급상승할 수는 있어도 쌍둥이처럼 둘이 정확한 시기에 동시에 1등까지 상승할 수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검찰 구형 후 이날 재판의 마지막 순서인 자매의 최후진술 차례. 법정을 가득 채운 자매의 가족과 취재진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언니 현 아무개 씨는 자신의 장래희망을 소개하며 입을 뗐습니다.
언니는 "자신의 꿈이 역사학자였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평소 성격이나 습관들을 비춰볼 때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습니다. 또한, 검사의 지적에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의를 되묻기도 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려 긴장될 법도 했지만 현 씨는 별도로 준비해 온 종이도 없이 차분하게 준비해 온 말을 이어가는 대담함도 보였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재판에 넘겨진 뒤 약 1년 동안 이어온 자매의 변론과정이 모두 종결됐습니다. 이제 남은 건 재판부의 최종 판단뿐입니다.
재판부도 검찰과 자매 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만큼 선고기일을 한 달가량 뒤로 넉넉히 기간을 두고 잡고 "(여름) 휴정기에 재판이 없는 동안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양 측의 변론은 이날로 종결되지만 추가로 자료를 미리 제출한다면 모든 기록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죄 확정에도 "유출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자매. 이 같은 결정이 '악수(惡手)'가 될지 묘수(妙手)가 될지에 대한 법적결론은 오는 8월 12일에 나올 예정입니다.>노컷뉴스, 김재완 기자.
저는 학생들이 뻔뻔하다기보다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미 유사한 사건으로 보이는 조국의 딸 재판 과정을 보면, 우리 사회의 정의는 '권력'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힘이 있는 실세이고, 그 아버지가 최고 권력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다 봤는데 그걸 '정의'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그 쌍둥이 자매가 참 안쓰럽습니다. 그 아이들이 재판에서 형을 받으면 권력의 실세가 아닌 아버지를 원망할까요? 그들의 행위가 정말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수가 없지만 우리나라의 정의는 힘이 있는 사람들 편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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