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2. 08:14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8월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는 그동안 힘들게 거둔 K-방역의 성공과 한국경제의 성과를 산산조각 내면서 방역을 무너뜨리고 경제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사랑제일교회와 광복절 집회 탓이라고 대통령과 정부가 힘주어 얘기하고 있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는 잘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의료계가 파업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의료계 파업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정부는 강한 어조로 비난만 하는 실정입니다.
<지난 주말 의료계는 긴박했다. 전공의협의회 회장의 공지문이 발송됐다. 의료계 7개 단체가 국회·의료계 협상안을 두고 밤샘 토론을 벌였다. 일요일 새벽, 협상안은 부결됐다. 정부발(發) ‘정책 4안’을 원점으로 돌리고, 코로나 진정 후 논의를 시작하자는 게 국회가 내민 협상안이었다. 아쉽다. 의료계는 또 공론의 뭇매를 맞게 됐다. 의료계가 받은 상처가 그만큼 치명적이고, 정부·국회 일심동체에 대한 불신의 골은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국민은 허허벌판에서 코로나를 맞는 상황이 됐다.
정부와 여당의 의료계 때리기가 한층 가열되고 여론도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이 무엇이고, 책임소재가 누구인지 정확히 짚어야 근본적 해결책이 나온다. 이 정부의 악습인 ‘고집(固執)정치’와 ‘고소(告訴)정치’가 사태를 키웠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이 강조한 ‘촛불정신과 합의정치’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없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일방적 ‘의료정책 4안’을 강행하고도 ‘면허정지’로 겁박한 주체가 정부였고, ‘바이러스 삼종 세트’(김경협의원), ‘강제동원법’을 서슴없이 발한 게 국회였다. 국회가 협상안을 내밀기 하루 전엔 전공의 열 명이 고발됐다. 죄목은 행정명령 불이행. 의료계의 자식뻘인 수련의와 학생을 징벌하는 정부의 냉혈은 부모의 자애(慈愛)가 아니었다.
경찰에 체포된 그들은 K-방역의 전사다. 지난 봄 그들은 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고글자국이 선명한 간호사, 복도에 쓰러져 토막잠을 청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그런 의료진들이 2차 웨이브 앞에서 파렴치한이 됐을까? 국민 안전을 던지고 제 밥 챙기는 ‘악성바이러스’가 됐을까? 미래의 의료전사들이 돌아선 데는 필시 곡절이 있는 거다.
감염병 전문병원이라면 몰라도 ‘정책 4안’은 그리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코로나 진압 우선’이란 의료계 호소는 꼼수로 몰렸다. 의료계 때리기가 시작되고 대통령이 정점을 찍었다. ‘전시에 군인이 전장을 이탈하는 격!’ 이러니 가슴이 멜 수밖에.
K-방역의 공신은 왜 전장을 이탈해야 했을까? 한국의 수재집단이 어느 날 정신이 나갔을까, 세계관이 바뀌었나? 아니다. 정권이 전장에 나선 그들의 사기를 꺾었다.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코로나 호기(好機)를 틈타 ‘공약 4안’을 들이댄 것이다. 틈새전략에 능숙한 정권의 공세, 코로나 사태를 악용한 건 의사가 아니라 정부였다. 그런데 그것은 헛돈 쓰는 하책(下策)이다. 정의와 공정 명분에 낭비한 세금이 얼마인가. 제도정비 없이 무작정 시행하면 부작용이 훨씬 더 커진다. 이 정부 다른 정책들도 대체로 그랬다.
‘의사 증원’이 지역격차를 해소할까? 의무복무 10년 후 지방근무 의사들은 도시로 몰려올 거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처럼 방벽을 세울 수도 없다.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OECD 통계? OECD 의사들은 하루 평균 열 명을 돌보고, 한국 의사들은 백 명을 진료한다. 수가가 싸서 그렇다. 동네 어귀마다 의사가 환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국가가 한국이다.
‘공공병원’? 시세엔 맞지만 민영과 공공병원의 진료비 차이는 거의 없다. 저(低)수가 보험 하에서 모두 공공병원이다. 환자들이 왜 공공병원을 외면할까? 시설과 인력보강, 처우개선이 더 시급하다. ‘첩약 급여’? 한 첩에 몇 십 만원 보약에 보험혜택을 준다? 비과학적이고 공정하지도 않다. ‘원격진료’는 시행할 필요가 있지만 상급 종합병원의 독점, 환자와 병세 확인, 진단과 처방의 정확성 등에 첨단설비와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이 시국에 계속 파업? 기득권 집단의 이기주의 아닌가? 맞다.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기를 포기하면 병의원은 쇠락한다. 결과는 의료서비스 질 악화, 국민적 재앙이다. 군인은 국가가 배양하지만, 의사는 오로지 개인 몫이다. 공익적 성격도 있지만 파업 권리도 갖는다. 파업 맹장 민노총에는 유순한 정부가 왜 유독 의료 파업엔 공공성을 내세우나? 의사 양성에 정부가 투자했는가? 병의원 개원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나? 영국처럼 의사가 청진기만 들고 부임한다면 공공의료다.
한국의 의사는 개인재산과 재능을 국가 통제의 재단에 바친 사람들이다. 영국의 건보율은 약 15%, 한국은 6.67%임에도 우리의 서비스가 몇 배 우수하다. 저수가를 의사가 몸으로 때운 결과다. ‘행위별 수가제’에서 명품진료에 웃돈은 없다. 수가 인상 없는 증원은 하루 진료횟수를 150명으로 늘려야 하는 잔인한 현실을 예고한다. 의료체계는 더불어 붕괴한다. 여론 악화를 무릅쓰고 학생과 전공의가 나선 이유다.
문제의 발단은 공상적 정책마인드에 매몰된 현 정권, 책임 소재는 몰아붙이기에 이골 난 청와대와 복지부, 그리고 적(敵)과 적수(敵手)를 구분 못하고 막말을 쏟아내는 국회 흥행단, 이 삼종세트가 화를 키웠다. 언제 한번 자책(自責)을 인정한 적이 있는가? 정부의 무결(無缺), 무오류, 무적(無敵) 행진을 비웃는 건 다름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다. 그럼에도 이제, 국민 안전을 위해 코로나 전선으로 돌아갈 때.>중앙일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우리는 언론에 따라 검사들을 욕하고, 때로는 언론 보도를 보고 의료계를 욕하고, 언론을 따르면서 적폐세력을 욕하지만 지금 보면 누구를 탓하는 것이 정말 바른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정부 들어와서 입에 달고 다니던 '적폐 청산'이라는 말이 슬그머니 사라진 것도 우리 국민들은 알 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누가 옳고 그런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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