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가 쌀을 먹는 세상

2020. 10. 19. 08:35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아침에 홍제천을 따라 50분 정도 걷다가 마포중앙도서관 앞에서 버스를 탑니다. 서울의 홍제천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도시의 대부분 하천에는 양 쪽으로 걸을 수 있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군데군데 운동기구를 갖춰 놓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젠 기온이 조금 내려가서 연세가 드신 분들은 많이 나오지 않지만 새벽부터 냇가에 나와 걷거나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저는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걷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홍제천은 서대문구 홍은동, 홍제동, 연희동, 가좌동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활동하는 큰 생활구역입니다. 물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큰 잉어가 꽤 많고, 오리도 꽤 많습니다. 그리고 작은 피라미 비슷한 물고기도 무척 많습니다. 예전 같으면 물에 들어가 그물로 그 작은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인다고 여러 차례 사람들 모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 그 홍제천을 따라 걷는데 할머니 몇 분이 요즘은 쌀이 너무 흔해서 문제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인지 주변을 보니 비둘기들이 냇가에 뿌려진 쌀을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홍제천에는 상당히 많은 비둘기들이 다리 상판 아래에 깃들여 삽니다. 여러 군데 다리에 있으니까 줄잡아 40-50마리는 넘을 것 같습니다. 특히 홍남교와 성산2교 아래에 많습니다.

 

비둘기가 쌀을 먹는 세상!

세상이 참 좋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집집마다 쌀은 남아돌아도 다른 잡곡은 없는 집도 있을 겁니다. 비둘기가 쌀을 먹는 세상이니 세상이 얼마나 좋아진 것입니까?

 

설마 북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쌀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흔한 쌀이 40년 전에는 군대에 가서야 70%의 쌀이 섞인 밥을 먹었습니다. 도시에서 잘 사는 사람에게는 쌀밥이 아무 것도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는 시골에서 겨울 한 철이라도 100% 쌀밥을 먹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더 잘 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이가 살아생전에 해마다 신년사에서 북한 주민에게 쌀밥을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고 했던 말들이 기억이 납니다.

 

이제 그 흔해서 넘치는 쌀이 그냥 우리 눈앞에 굴러 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제가 지금 쌀이 넘치게 만드는 현실에 크게 공헌을 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우리 농민들이 피와 땀을 흘려서 지은 귀중한 양식이라는 생각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모든 국민이 쌀밥을 먹는 것을 별로 감사할 줄 모르며 사는 시대는 지금 우리 시대가 유일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둘기만 쌀을 먹는 게 아니라 집에서 몇 마리 키우는 닭들도 쌀을 먹으며 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기는 개와 고양이도 유기농 사료를 먹는다는 세상이니 그 쌀이 뭐가 대단하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쌀밥을 마음 편하게 먹고 살기 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