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2020. 11. 6. 12:28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최근 전세난의 원인에 대해 저금리나 전(前) 정권 정책 등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런 요인들이 전세난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근본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국민일보가 접촉한 부동산 전문가들도 정부가 ‘임대차 2법’(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정책 실패 논란을 피하려고 ‘남 탓’으로만 일관하다 보니 제대로 된 대책도 나오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대란의 원인과 관련해 “주거형태나 문화가 바뀌는 측면도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옛날에 저희가 결혼할 때에는 출발 자체가 단칸 셋방에서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대 분화도 많고 고급화도 돼서 공급을 열심히 해도 수요 폭증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도 같은 날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수도권 전셋값 상승은 세대 분할의 효과가 크다”고 거들었다.

 

과거에 비해 세대 분화가 활발하고 아파트 선호가 뚜렷해진 것은 사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총가구 수는 2089만 가구로 1431만 가구였던 2000년보다 31.5% 늘었다.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에 전체 가구의 15.5%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0.2%로 배 가까이 뛰었다. 아파트 거주 가구도 2000년 36.6%에서 지난해 51.1%로 늘었다.

 

하지만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5일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지 않으냐. 그동안 뭐하다가 이제 와서 주거문화 탓을 하느냐”고 꼬집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전세난의) 근본 원인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기준금리가 0.5%로 떨어진 것”이라며 “저금리 때문에 유동성 과잉으로 전세대출이 2배 정도 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저금리가 전세난의 원인이면 한국은행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한 지난 3월과 5월 직후가 아니라 왜 8월부터 전세난이 본격화됐겠느냐”고 반박했다. 전세대출 증가가 저금리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주객전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전세대출 증가는 전세 급등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주거상향 욕구와 집주인의 보증금 인상 요인이 전세난의 원인이라고도 설명한다. 그러나 현 전세난은 선호지역이나 아파트, 빌라 등에 관계없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또 전세 매물이 많으면 집주인이 높은 보증금을 요구하더라도 다른 집을 찾으면 된다. 오히려 서울 전셋값이 60주 넘도록 상승해온 시점에서 매물 감소를 유발하는 임대차법을 밀어붙인 게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달 28일 한 방송에서 “박근혜정부가 부동산 부양책을 쓰고 임대사업자에게 혜택을 줘 집값이 올라갔다. 그 결과를 이번 정부가 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부동산 정책은 시장 상황에 맞게 해야 하고, 박근혜정부 초기에 부동산 경기가 냉각됐기 때문에 부양책을 썼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 정부 들어 3년 동안 23번의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시장 안정을 못 이뤄놓고 전 정권을 탓하는 건 자신의 무능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은 현 정부 초기에 오히려 강화됐다는 점에서 사실 왜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8·2 대책 발표 직후 김현미 장관은 직접 방송에 출연해 다주택자들에게 임대사업자 등록을 권유했다.>문화일보, 이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