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한국군

2023. 3. 15. 06:12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지난달 7일 베트남 전쟁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원고로 한 국가배상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건이 발생한 1968년으로부터 55년 만의 일이다. 시간으로 보면 공소시효가 다 지난 일이지만, 법원은 원고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베트남 전쟁 피해자에 대한 판결은 한국 사회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는 전투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부인했고,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양민학살을 조사하고 피해 보상을 주장했던 시민사회에서는 베트남 전쟁에서 발생했던 과거사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를 채웠다고 환영했다.

 

베트남 과거사 문제의 해결은 또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내로남불을 불식하고 한국이 피해자의 입장인 과거사들을 해결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한국 사회는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이 스스로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 반성하고 보상해야만, 떳떳하게 과거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양민 학살은 진상 규명 어려워

베트남에서의 양민 학살 사건은 그 해결이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양민 학살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다르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민간인 학살이 일어날 경우 이를 문서로 지시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밖에 없다. 학살 현장에서 사망한 피해자들의 성별과 나이로 민간인 피해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시 현지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과 관련하여 당시 한국과 남베트남, 그리고 미국 사이에는 협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이 전투 중 발생한 민간인 피해 보상을 포괄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조사 및 보상과정도 간단치 않다.(이신재,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주둔군 지위와 민간인 피해 보상’)

 

물론 지난달 7일자 판결에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국군의 증언과 당시 미군의 조사 보고서가 중요한 증거가 되었지만, 다른 사건들의 경우 증거가 부족한 실정이다. 베트남 전쟁과 같은 내전 상황에서는 게릴라와 민간인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과 함께 북한군의 일부가 북베트남에 파병되었다는 사실도 문제가 된다.

 

베트남전쟁사에서 사라진 한국군

이러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의 중심에는 참전 군인들이 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사실이 있다. 미국 내에서 출간된 베트남 전쟁 관련 책 중에 한국군을 다루거나 언급한 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 내에는 한국군과 관련된 많은 자료가 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참전 장교들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전투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한국군의 성과뿐만 아니라 작전 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막상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했던 미국 내에서 한국군과 관련된 연구 성과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베트남 정책 관련 미국 국무성과 국방성 문서에서 한국군이 나타날 뿐이었다.

 

이 점은 베트남 전쟁 내용을 포함한 세계현대사 개설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미국의 동남아 정책, 국제정세, 참전 미군들, 그리고 전쟁의 영향 등을 다루면서도 막상 한국군을 언급한 책은 없었다. 도대체 베트남 전쟁에서 5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그 두 배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한국군은 세계사 속에서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베트남에 참전한 한국군들은 1990년대 말까지 한국 사회에서도 잊힌 존재였다. 19731월 베트남으로부터 한국군이 모두 철수하였지만, 그 이후 한국 사회는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유신체제가 내부로부터 무너졌고, 민주화가 올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신군부가 들어섰다.

 

진보 세력은 신군부의 억압 하에서 민주화에 전력해야 했고, 신군부는 참전군인과 고엽제 피해 이슈가 정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급기야 참전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베트남 전쟁 파병의 의미를 정리하고, 참전군인들에 대해 보상해야 하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전 군인들은 가해자이지만, 그들 역시 피해자였다. 자발적으로 갔던, 강제로 갔던, 이들은 정부가 마련한 동원 시스템 속에서 베트남으로 갔다. 그리고 어디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국에서 죽고 다쳤다. 그리고 상대방을 죽인 군인들은 그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었다.

 

베트남 참전군이 보낸 전투수당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병을 결정했지만, 한국 정부는 승리하지도 못할 전쟁에 젊은이들을 보냈다. 이 전쟁에서 정부가 파병의 목적 달성 여부는 돈을 많이 벌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을 도와 남베트남 정부를 지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었지만, 이는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정부는 동원된 군인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희생자들에게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참전 군인들의 전투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었는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제대로 다 받았다는 분들도 있지만, 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2대 주월한국군 사령관을 지냈던 분이 한 강연에서 참전 군인들의 전투수당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깔 수 있었다고 한 발언은 참전 군인들을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1967년에서 1969년 사이 베트남의 한국군과 근로자들이 한국으로 보낸 송금액은 한국의 국민소득 증가분에서 6~9%를 차지했다. 비실업인구의 소득 증가액과 비교하면 15%에 달했다. 당시 미국이 지급한 전투수당과 참전군인들의 송금액을 비교하면 전투수당의 80% 이상이 송금되었다. 이들은 효자 아들, 든든한 남편, 좋은 아빠였다.

 

참전 군인들은 국가의 명령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이들이 행한 모든 행위는 평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전쟁 포로가 상대방 국가의 법에 따라 처벌받지 않는다는 이치와 같다. 물론 민간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전쟁규범을 어겼을 때는 군법에 따라서 처벌된다. 그러나 이들이 배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배상은 국가가 해야 한다.

 

전범 재판은 대부분 형사 재판

지난달 7일의 판결은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개인의 피해에 대해 외부에서 개입했던 국가가 배상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 군국주의 일본, 그리고 유고 내전, 르완다 학살, 캄보디아 학살 등에 대해 전범재판이 있었지만, 이는 형사재판이었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관련된 재판이 아니었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평화협정이 맺어질 때 전쟁 당사국 사이에 피해 보상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다. ·일전쟁 후 맺어진 시모노세키 조약,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베르사유 조약,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모두 배상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 간 조약이었지, 재판의 결과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번 한국에서의 재판 결과는 세계사적으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제 해외에서 발생한 분쟁에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결의나 요청 없이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파병 군인과 현지 민간인 사이의 갈등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지금까지 국가 간에 승자와 패자 사이의 합의와는 다른 차원이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높이는 계기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을 하는 순간 참전 군인들은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서 명예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국가가 보상하지 않으면, 그 몫은 참전군인 개인들에게 간다. 사회 통합적 관점에서 이 재판은 피해자인 참전 군인들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정부는 참전 군인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이 재판을 계기로 세계사 속에서 한국의 참전 군인들의 존재가 객관적으로 복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세계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사 문제 해결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대중문화와 함께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재판 결과에 불복한 항소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베트남 외무부 성명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때다.>중앙일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베트남 참전 한국군은 왜 잊혔나? 그들도 피해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