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2023. 5. 17. 05:59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위선(僞善)” 겉으로만 착한 체를 하거나 거짓으로 꾸밈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겨레신문의 이세영 전국부장은

정치인에게 어느 정도 위선은 허용해야 한다는 관용론도 엄연히 존재한다. 심지어 정치 영역의 위선은 적극적으로 장려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다. 속마음을 감춰 선함을 가장하는 행위 없이는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 자체가 작동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도 이런 생각을 공유한다.

 

아렌트는 공적 이슈를 다루는 공간(폴리스)에서는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 없는 내밀한 이해와 욕망이 아닌, 밖으로 드러나는 견해와 주장들만 쟁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죄의 유무를 다투는 법정에서 말해지거나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은 속마음이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겉과 속을 구분하고 그 일치 여부에 따라 진실인지 위선인지를 따지는 것은 정치 세계에선 부질없는 일이다.

 

비단 정치뿐이겠는가. 피터 버거 같은 사회학자는 사회 역시 속이고 속아주는 기만의 상호작용 없이는 지탱될 수 없다고 말한다. 가족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숱한 긴장과 불화 속에 존재하는 가족이 남편인 척’ ‘아내인 척 하는 가식의 퍼포먼스 없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이 원초적 공동체를 깨고 싶지 않다면 그 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을 섣불리 파헤치려 들어선 곤란하다. 너와 나의 위선으로 쌓아 올린 공모의 공동체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한겨레신문 칼럼,위선을 옹호함

 

이렇게 위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더민당이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위선을 지적하면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하면서 정치판의 위선자들을 옹호할 것입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영화 속 금자의 수감 생활 13년은 복수의 칼을 갈고 닦는 인고의 시간이었다('친절한 금자씨', 2005). 사이코패스 살인마 백 선생의 이마에 권총을 겨누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잔혹 피날레를 꿈꿨다.

 

세상 물정 모르는 금자를 꾀어 6살 원모를 유괴하게 하고 살인죄까지 뒤집어씌운 작자다. 금자는 그러나 겉으론 세상에 둘도 없는 친절 모범수, 살아있는 천사로 통했다.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를 나서는 금자를 야릇한 미소의 전도사가 하얀 두부를 들이밀며 맞이한다.

 

금자는 그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노려보더니 두부를 접시째 엎어버리고는 또랑또랑 쏘아붙인다. “너나 잘하세요.” 속죄와 구원을 갈구하는 가련한 여인의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복수심에 불타는 마녀로 탈바꿈하는 극적 반전이다. 동시에 개인사회종교의 이중성에 던지는 묵직한 돌직구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에 금자처럼 가면 하나쯤은 걸치고 살아가는 존재 아닐까. 기뻐도 슬픈 척, 슬퍼도 기쁜 척 감정을 숨바꼭질하곤 한다.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모르면서도 안다고 젠체하기도 한다. 남몰래 쌓아 놓은 재산이 많으면서도 서민 흉내를 내는가 하면, 별반 가진 게 없으면서도 부자 코스프레를 서슴지 않는다.

 

겨 묻은 남의 알몸을 억지로 보는 게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듯 배불뚝이 맨몸이 아무 데서나 드러나지 않게 잘 가려주는 것을 공동체 예의범절로 여기며 생활해 나간다.

 

그런데 가면에 도덕적 현미경을 갖다 대면 그때부터는 위선(僞善) 모드가 작동한다. 2012년 미국 오하이오대 마크 앨리케 교수팀 연구에서 미국인 89% 비디오 가게에서 성인영화 코너를 들락거린 사람이 포르노 추방 운동을 돕는 건 위선이라고 판단했다.

 

절반 가까운 43% 교회 자선행사에 자원봉사 나서는 것만으로 위선이라고 봤다. 또 다른 연구에선 불법 약물 사용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은 위선이라는 답변이 65%에 달했다. 딱히 누구를 욕하거나 해코지하지 않더라도 위선은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돈다.

 

위선을 행한 사람은 온갖 미움을 사게 된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비아냥과 손가락질이 날아든다. 왜 그럴까. 심리학자인 질리언 조던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팀은 거짓 신호(false signaling)’ 개념으로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남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타박하는 사람은 침묵하는 사람에 비해 더 도덕적인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애초 비판 행위는 거짓 신호가 된다. 거짓 신호는 사람의 분노와 불안 감정선을 동시에 자극해 비난의 강도를 높인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의 골도 그만큼 더 깊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면 서러움이 더 뼈저리게 다가오는 법이지 않은가.

 

조던 교수는 2022년 논문에서 이를 위선으로 얻게 된 평판 이익에 대한 비용으로 계산하고, 위선 페널티(penalty)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위선세()' 정도가 아닐까.

 

조던 교수는 벌칙을 피해가거나 줄일 수 있는 꿀팁도 제시했다. ‘정직한 위선자가 되라’. 한마디로 자기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라는 뜻이다. 이때 중요한 건 역시 타이밍이다. 그런데 흙수저 코스프레로 국민을 우롱했다는 비판을 받는 김남국(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원은 그 반대로 갔다.

 

‘60억 코인 투자 의혹이 불거지자 김 의원이 내민 첫 카드는 음모론과 물타기였다. “민감한 금융정보와 수사정보를 언론에 흘린 것은 한동훈 검찰 작품” “이준석이 하면 자랑이 되고, 김남국이 하면 문제가 되는가?”(5 6). 그러면서도 음모론의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누구도 코인을 사라고 한 적 없다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반박에 변명이 궁색해졌다.

 

게다가 2 때 산 안경을 20년 동안 썼다” “변호사 시절에도 아버지 차 물려받아 24까지 탔다”(5 8), 본질과 무관한 생뚱맞은 읍소가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그사이 김 의원 의혹은 도덕적 위선의 수준을 뛰어넘어 코인 게이트 의혹으로 번졌다. “국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는 지각 사과는 있는 듯 없는 듯 묻혀버렸다.

 

다시 영화 속 금자. 복수극은 완성했어도 유괴에 가담했다는 원죄의 구원은 끝내 받지 못했다. 어느 겨울밤 금자는 새하얀 눈 속에서 두부 모양 흰 생크림 케이크에 얼굴을 연신 파묻으며 다짐한다. “하얗게 살자. 속죄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식이었다.

 

어떤 과오든 만회할 때를 놓치고 나면 아무리 깨닫고 뉘우쳐도 하얗게 씻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중앙일보. 임종주 정치에디터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임종주의 시선

 

  물론 저도 위선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이라고 얘기한다면 더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저도 성인영화 좋은 것 있나 찾아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르노를 배척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포르노 배우가 존재해야 포르노 영화가 나오기 때문에 그걸 탓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범죄자, 마약투약자, 사기꾼을 비난하고 비판합니다. 제가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겨레신문의 논지라면 정치인 중에 욕을 먹어야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버젓한 신문이고 그 기자들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저런 뻔뻔함이 우리 사회를 저질로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두부 모양의 하얀 케이크에 얼굴을 묻고 하얗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정치인이나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하얀 두부를 먹으면서 다음 위선을 다짐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