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5. 07:14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과학 부정론자와 대화하는 법(How to talk to a Science Denier, Lee McIntyre, 2021년)』이란 책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구형(球形)지구·기후변화·백신·GMO(유전자변형식품) 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과학 부정론은 그들의 정체성 자체이며 증거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말했습니다.
대중은 과학적 사실의 수용에서 정서적·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화되고 있다고 합니다(Pew리서치센터). 일례로 미국의 민주당원은 94%가 기후변화가 심각한 위협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원은 19%만 그렇게 보았다(2016년)고 합니다. 특히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과학 부정은 완강하며 미디어 양극화로 인해 조직화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계와 반대진영의 논쟁은 이성·합리성·효율성 대 감성·직관·불신의 대결이었습니다. 현재도 과학은 국제기준 등 수치와 관측 결과를 강조하고, 반대진영은 자극적 구호와 시위로 방사능의 잠재적 위험과 재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중은 차가운 이성의 언어 대신 감성적 호소에 쏠릴 때가 많은데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에서 과학기술 혁신역량 5위(36개국, 2021년 KISTEP)인 우리 사회의 과학 부정과 커뮤니케이션 한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저도 무조건 과학적 증거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과학이 다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성적 호소보다는 과학적 증거를 더 믿습니다.
<한국 정치가 거짓말의 수렁에 빠졌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야당의 정치적 거짓말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거짓말은 전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진부하다. 거짓과 가장 친한 분야가 현실 정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정치의 ‘거짓말 사태’는 도를 넘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김앤장 변호사 30여 명과 지난 7월 19일 청담동 술집에서 새벽까지 술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물론 다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그리고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안을 둘러싼 거짓말 공방이 뜨겁다. 모두 내년 총선 전략의 일환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정치적 거짓말들은 전혀 진부하지 않다. 매우 새롭다. 가장 큰 새로움은 ‘사실에 대한 저항’(fact resistance)이다. 예전의 정치적 거짓말에서는 ‘사실’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조작했을 뿐이다. 2001년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터뜨린 김대업 사건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부터 거짓말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선동의 최전선에 선 민경우 씨(전 범민련 남측 사무처장)는 “광우병에 대해, 팩트에 대해 회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도 ‘사실’에 무심했을 뿐, ‘사실’에 저항한 것은 아니다.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시위에서 거짓말이 질적 도약을 이뤘다. 방사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웨이드 앨리슨 교수(옥스퍼드대)는 “정화된 후쿠시마 오염수는 당장 1리터라도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그를 ‘돌팔이’로 매도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안전 기준을 충족한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도 부정했다. ‘과학’의 판단을 부정한 것이다.
인류는 사실에 대한 ‘판단’(judging)에서 과학을 넘어서는 수단을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 과학보다 더 우수한 방법을 발견했나? 그렇다. 기만이라는 방법이다. 기만이 반드시 이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이성에 더 호소력을 갖는다. 선동가는 거짓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사실보다 더 유혹적이다.
탈진실 또는 탈사실화(defactualization)의 정치는 전 사회를 거짓말로 세심하게 감싸는 전체주의 체제에 적합하다. 소비에트 사회에는 실업과 범죄가 없다는 식이다. 북한 체제는 수령님의 품 안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낙원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간다.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에 경기를 일으키는 건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 체제도 ‘탈진실’(post-truth)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대인은 난무하는 광고 속에서 산다. 그런 환경에 맞춰 진화한 현대 정치의 절반은 ‘이미지 만들기’고, 나머지 절반은 그 이미지를 믿게 하는 것이다.
정치적 거짓말은 선진국에서 더욱 성업 중이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재임 시 하루 16.5회 거짓말 또는 사실을 호도하는 발언을 했다. 그의 일부 지지자는 과학 거부주의(science denialism)를 천명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탈진실’을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최첨단 소셜 미디어는 탈진실 정치의 온상이다. 거짓말을 광속으로, 무제한 배달한다. 게다가 거짓말을 소비하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한다. 정치가와 정당은 이 시장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인다. 민주정치의 집권 룰이 도덕이 아닌 다수결이기 때문이다. 사실이나 진실보다, 다수표가 우선이다.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단순 다수 승자독식의 한국 정치 체제는 탈진실의 정치가 번성할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이국배, “탈진실의 조건”). 이제 정치적 거짓말은 가장 이익이 남는 비즈니스가 되었다. 김남국 의원이 최신이고, 조국은 진화 중이다. 정치적 거짓말은 개인적 도덕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바뀌었다. 도덕적 비난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사실적 진실’(factual truth)이 존재하는가이다. ‘사실’은 ‘판단’(judgment)에 의존한다. 조국 사태처럼 같은 사실도 달리 판단한다. 그렇다면 객관적 진실은 없고, 오직 ‘관점’(perspective)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유발 하라리 역시 국가, 기업, 종교, 이념 등 인류 문명 자체를 일종의 허구(fiction)로 본다. 이게 지금 우리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의 본질이다.
이 파괴적인 지적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나? 먼저 정치적 거짓말이 도덕을 넘어 구조와 철학의 문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교수, 정치학
출처 : 조선일보. [朝鮮칼럼] 거짓말의 질적 도약… 정치가 FACT에 저항하고 있다
남들이 무슨 거짓말을 하든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사람 개개인의 판단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거짓말의 판단을 개개인에 맡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김의겸의 청담동 술자리 주장은 100% 거짓말로 밝혀졌지만 그게 거짓말인 줄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김의겸의 주장을 받아드리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실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사실이기를 바라는 심리 때문에 그런 거짓말쟁이들이 큰소리를 치며 지금도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 거짓말쟁이들이 큰 소리로 거짓말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이게 1960년 중반의 중국 문혁의 부활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거짓말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는 어떤 진실도 먹히지 않고 그 진실은 거짓말의 회오리에 다 날아갑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바닥에 묻혔던 진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그 진실은 이미 발기발기 찢겨서 제 모습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대체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런 거짓말의 대부분이 더민당 대표로 등장한 인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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