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의 “후회라는 단어”

2024. 5. 20. 06:11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연예인에게 특별한 윤리 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도덕군자일 필요는 없다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책임감 같은 것은 있는 줄 알았다.

 

야심한 밤 서울 강남에서 자신에게 100% 잘못이 있는 교통사고를 일으켰는데도 뒤처리를 하지 않은 채 현장을 이탈했던 가수 김호중씨의 여러 논란을 보면서 예리한 칼로 자른 듯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게 됐다충돌 차량의 앞부분이 공중으로 들썩일 만큼 상당한 충격이 있었던 그 순간 김호중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극단적인 공황 상태에 빠져 지금까지 쌓아올린 인기 절정의 커리어가 한순간에 와르르할 수도 있다는 절망감이 엄습했을지 모른다. “침착하자고 되뇌면서무조건 자신 편을 들어줄 매니저와 소속사 대표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그런데 이때 사고 현장으로 돌아가서 부상자를 살펴봐야 한다는 양심 같은 것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그는 주말 공연장에서 모든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라고 해서 아리송했는데사고 난 지 열흘 만인 어제 음주를 시인했다그 또한 코너에 몰리자 어쩔 수 없는 고백을 한 것처럼 들린다그가 들렀던 술집이 여성 접객원이 나오는 회원제 룸살롱이었다는 소문도 있고래퍼 출신 유명 가수와 개그맨이 동석했다는 얘기도 있다또 공연장에서 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후회라는 단어다라고 했다는데어떤 의미에서 후회였을까.

 

그는 이번 일을 풀리지 않는 숙제라면서 바깥의 김호중이 있고무대의 김호중이 있는데무대의 김호중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한다어떤 대중 연예인에게 내재하는 전혀 다른 두 캐릭터가 무대 안팎에 병존할 수 있다는 부조리 예술철학이라도 설파하려는 것인가. ‘풀리지 않는 숙제라며 던진 진실 게임 화두는 일종의 전략적 모호함처럼 들린다참 바르지 못하다.

 

그날 밤 그가 어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음주 운전의 죗값은 어떻게 치르게 될지또 매니저에게 옷을 벗어줘 바꿔 입게 한 경위소속사 대표의 옹호 발언사라진 블랙박스 등등 차차 밝혀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그때부터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다른 데 있다처음부터 드러난 모든 정황 증거에도 거짓과 의혹의 사이즈를 키워가는 뻔뻔함과 어리석음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됐는가이런 괴물 같은 상황과 인간 군상은 왜 만들어진 것이며전도된 가치관 위에 축조된 허위의식 구조는 누가 씨앗을 뿌렸고 배양했는가.

 

가까운 원로 작곡가 한 분이 문자를 보내오셨다이쪽 생태계를 잘 알고 있는 분이다그는 지금 우리 정치를 주무르고 있는 몇몇 인물을 거론하면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큰소리로 궤변을 늘어놓으며 날뛰고 있고그쪽 지지자들은 몰표까지 주고 있습니다라고 통탄했다그러면서 김호중이 하는 행위들이 똑같다고 했다.

 

처음부터 음주 운전에 사고 뺑소니 등등 거짓 언행들이 과학적으로 들통이 나는데도공연까지 강행하고 진실은 밝혀질 것’ 이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까지 했다고 지적했다또한 그의 팬들은 그간의 조사 과정을 보아 사건의 실체를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그런 김호중을 향해 박수 치고 함성을 질렀다니유명 정치인들이 하는 짓거리와 몰표를 주는 지지 현상이 똑같다고 했다.

 

이번 시즌에 수십 억 원이 넘는” 김호중의 콘서트 매출이 관련돼 있다는 말도 들린다김호중 티켓은 VIP석 기준 임영웅보다 23000원쯤 비싸다평균 20만 원쯤 되는 티켓이 연일 매진되는 상황에서 물러설 수 없었을 것이고그때 양심이나 최소한의 책임감은 헌신짝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지금의 검찰 고위직을 잘 아는전직 검찰총장급의 비싼 변호인을 선임하면 돌파구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이렇게 우리 사회의 양심은 마비돼 가고 있는 것이다.>조선일보김광일 기자 논설위원

 

  출처 조선일보오피니언 [태평로], 김호중의 후회라는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