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 시’

2024. 7. 16. 05:59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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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천 시’ 때문에 온라인이 자못 떠들썩했다.

 

야외 활동 건으로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우천 시 모일 장소를 안내하는 문구를 읽고 한 학부모가 우천시가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이다요즘엔 검색 한 번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건만굳이 교사에게 물어본 그 학부모가 일단 경솔했다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한자 교육 찬반 논쟁으로 비화하였다어렵거나 한글로 대체할 수 있는 한자어는 지양하자는 주장과 이참에 한자 교육을 강화하자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둘 다 사안의 본질에서 적잖이 벗어났다어떤 동일 대상을 같은 의미의 한글(vernacular Korean)과 한자어(Sino-Korean)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그것은 한국어의 복일지언정 화는 아니다오래 쓰던 말인데도 단지 한자어라는 이유만으로 그 단어를 폐기할 이유는 없다. ‘비가 오면과 우천 시’ 가운데 양자택일할 사안도 아니다표현은 풍부할수록 좋고그럴수록 고급 언어다.

 

한자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서구 중등학교에서도 라틴어를 필수로 강제하지는 않는다알면 당연히 큰 도움이 되겠지만 필수일 필요는 없다무엇보다도 우천시가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물어본 학부모의 문제는 한자 능력과는 무관하다단어(words)와 표현(expressions)은 언어생활을 통해 습득한다독서도 그 한 과정이지만언어 습득은 독서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또한 라틴어를 몰라도 한자를 몰라도 고급 수준의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어떤 글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해력을 갖춰야 하며그다음에는 독해력이다해당 학부모는 둘 다 부족해 보인다문해력(literacy)은 말 그대로 텍스트 내용을 이해하고자기 생각을 글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다그러려면 단어와 표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 학부모가 우천 시라는 표현을 정말 몰랐다면 그것은 지금껏 그 표현을 별로 듣거나 보지 못했음을 뜻한다어휘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그렇게 된 이유는 그 학부모의 국어 실력 문제이지 한자 교육 여부와의 상관성은 약하다.

 

독해력(reading comprehension)은 읽은 내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이른다따라서 문해력이 떨어지면 독해력은 말할 것도 없다중등교육 과정에서 학생이 국어는 곧잘 하면서도 영어를 못하는 사례가 적잖다.

 

언어를 다루는 지적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영어 성적이 안 좋은 이유는 영어라는 언어를 구성하는 기본 단어와 표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즉 영어 문해력이 약하기 때문이다그러니 영문 독해 문제를 잘 풀 수도 없다이유는 간단하다영어 학습을 별로 안 했기 때문이다.

 

굳이 교육을 논하려면 한문보다는 국어 교육 문제를 살필 필요가 있다내 경험이지만, 1970년대 후반만 해도 고등학교 문과에서는 국어 시간이 가장 많았다국어 교과서 4시간문법 2시간작문 2시간한문 2시간한문II 2시간고전 2시간이었다물론 한 학기에 문법과 작문을한문I과 한문II를 동시에 수강하지는 않았다그래도 국어 관련 주간 수업시수가 근 10시간이었다.

 

요즘 대학생에게 글쓰기 실력의 심각성을 얘기하며국어 문법이나 작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놀랍게도 그런 수업 시간은 아예 없다는 답이 많았다가뜩이나 독서량이 급감하고 SNS에 익숙한 요즘 세대의 문해력과 독해력이 예전 같지 않은 현실은 차라리 당연하겠다.

 

그렇다고 난리법석을 떨면서 다 같이 걱정할 일도 아니다학생 개개인의 학습 욕구 역시 큰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예전에 어떤 학생이 3·1운동을 ‘31’로 읽었다고 하여 국사 교육을 강화하자며 떠들썩하다가 은근슬쩍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으로 넘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 안 하는 학생은 있게 마련이다어휘력이 부족한 탓에 우천 시의 의미를 몰랐을지라도 문맥을 통해 유추하지도 못했다면 그것은 본인의 문제다그래도 어떻게든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를 원한다면 국어 교육이 우선이다단 순우리말도 국어이고이미 우리 말이 된 한자어도 국어다그 둘을 자꾸 분리하지 말자.>국민일보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출처 국민일보오피니언 칼럼 [국민논단], 국어 실력문해력과 독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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