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괴물인가

2024. 7. 17. 06:10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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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다시 봐야 할 시간인 듯하다하나의 세상이 각자의 시점에 의해 여러 세상이 되는오늘 우리 모두의 이 사회적 착란 속에서 갈피를 잡으려면 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싱글맘 사오리 눈에 비친 초등 5년생 아들 미나토의 기괴한’ 행동집단 괴롭힘에 시달리는 친구 요리에 대한 미나토의 연민성실한 교사이건만 오해와 우연이 겹쳐 폭력 교사의 오명을 쓴 채 학교 밖으로 떠밀리는 교사 호리부모자식 간이든선생과 학생 사이든 관계는 서로에 대한 스틸사진만 갖고 이뤄진다사진 찍기 전 모습을 모르고다음 모습도 모른다오직 내가 본 것내 눈앞의 편린(片鱗)만이 사실이다.

 

사리에 밝고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오리지만 느닷없이 차에서 뛰어내리고어느 날 갑자기 제 머리를 마구 깎는 미나토를 보면서 실은 이 아이 가슴에 요리라는 친구가 있고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요리를 안타까워하는 순수한 마음이 돌출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까지 헤아리진 못한다담임선생 호리도 마찬가지.

 

책걸상을 마구 집어던지는 미나토를 보면서 그게 요리를 지키려는 행동이란 건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이들이 미나토라는 퍼즐 조각을 하나씩 어렵게 꿰맞춰 가는 사이교장은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며 호리를 학교 밖으로 내몬다미나토를 때린 게 아니라는 호리의 호소가 진실일지언정 그에겐 학교폭력에 대한 주변의 원성이라는 현실이 중요하다.

 

 

새 대표를 뽑는다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만신창이가 됐다. ‘김건희 문자 폭탄을 두고 한동훈 대 나경원원희룡윤상현 등 당대표 후보 4명이 벌인 사생결단의 난전이 삽시간에 한동훈 댓글팀 운영 의혹 공방으로 치달았고급기야 후보 합동연설회에서의 지지자들 몸싸움으로 번졌다.

 

모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외치고 싶은 것만 외친다. 4월 총선을 석 달 앞두고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직접 사과할 뜻이 있다는 요지의 문자를 보냈건만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묵살했다. ‘사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었다고 했다난독증이 아니라면 둘 사이에 다른 사연이 있어야 가능한 해명남이 알 리 없다.

 

때를 놓칠세라 원희룡나경원 등은 앞뒤 자르고 한동훈의 판단 착오를 주장했고난투는 국정농단을 운운하는 상황으로 내달았다한동훈이 김 여사의 문자는 당무 개입이라 하자 나경원은 야당에 대통령 탄핵의 빌미를 던져 줬다고 치받았다안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 빌미가 궁하던 더불어민주당에 호박을 넝쿨째 던져 줬다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정농단의 망령이 대한민국을 떠돈다고 했다.

 

서로의 스틸사진 몇 장만 쥐고 있을 뿐이건만 한동훈은 그걸 갖고 문자 폭탄을 터뜨린 배후를 의심하고원희룡·나경원 등은 한동훈의 배신을 의심한다진실은 이들에게 중요치 않다모두가 플라톤의 동굴에 갇힌 채 저 그림자가 어떻고이 그림자가 어떻고 하며 저마다의 사유 속으로 세상을 욱여넣는다.

 

누군가 동굴 밖을 나갔다 돌아와 저건 그림자일 뿐이라고 외친들 개소리일 뿐이다자중지란지리멸렬은 이들을 위해 준비된 사자성어가 틀림없다아니 자중지란의 원형이라 할 하나의 가치와 연대 자체가 원래 없었던 관계들이라고 하는 게 적확해 보인다.

 

플로리다 목수개미가 있다다리를 다친 개미는 동료에게 제 다리를 내주고 동료들은 그 상처 난 다리를 입으로 잘라 낸다그렇게 해서 다친 개미를 살리고세균이 번져 집단 전체가 몰살하는 걸 막는다군집생활을 하는 사회성 생물의 집단선택이 이 경지에 다다랐다.

 

지금 국민의힘에 자기 다리를 내줄 사람이 있는가여야의 전당대회가 윤 대통령과 이재명 전 대표를 지킬 지도부를 뽑는 선거가 된 것도 기괴하지만민주당과 달리 찢기고 갈라진 국민의힘은 누가 대표가 된들 그 다짐을 지킬 가능성조차 희박해 보인다.

 

우리가 우리인 적이 있긴 했던가. ‘이재명이 없어도 우리가 우리일까이재명만은 막겠다며 시나브로 이재명에 갇혀 버린 국민의힘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내 자신인가우리인가국민인가누가 괴물인가.>서울신문진경호 논설실장

 

   출처 서울신문오피니언 [진경호 칼럼], 누가 괴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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