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30. 05:55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연예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좋아하고 따르는 팬이다.
열광하는 팬들 덕분에 행복하기도 하고 그들이 점차 소멸되는 것에 고통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과거의 고무신 부대, 오빠부대, 아줌마 부대 팬덤에 비해 오늘의 SNS 사회에서는 그 정도가 극단으로 치닫는다. 하던 일 내던지고 동네 공연장에 달려가던 고무신 처자들, 꽃다발 들고 방송국 앞에서 소리 지르던 단발머리들, 도시락 챙겨가며 ‘욘사마’에 빠지던 주부들 차원을 넘어선다.
굿즈를 만들고, 후원금을 모아 거액의 선물을 보내고, 전 세계 공연까지 쫓아다니며 팬 활동을 한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다. 그 과정에서 확증편향이 일어나, 스타와 관련된 좋은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들은 부정하며, 그를 영웅시하거나 신격화하면서 추앙하기도 한다. 그런 믿음 때문에 스타가 비리나 범죄를 저질러도 실망하거나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 자신의 믿음을 행동에 일치시켜 그대로 유지하려는 본성, ‘인지부조화’로 인한 것이다.
인간은 자기 신념과 일관되지 않는 부정적 정보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신념과 일관된 정보에 비해 그것을 보다 인지적으로 분석하는 데 노력과 시간을 더 많이 들인다. 이는 그 정보에 대한 오류를 발견하고 그것을 반박하는 분석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자신의 신념과 일관된 정보에 대해서는 인지적 분석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를 발견할 가능성이 작고, 결과적으로 편향되게 받아들일 개연성이 더 짙다.
또한 사회 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자기의 정체성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에, 그 집단에 대한 평가는 곧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집단의 지위가 높아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속하지 않은 외집단을 내가 속한 내집단과 차별하고 그들을 향한 편견을 가지고 차별화하려 한다.
그렇게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집착으로 자신이 추종하는 스타에 대한 비난은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고, 자기가 존경하는 그가 그런 일을 할 리 없다는 과잉 반응을 하게 된다.
특히, 온라인에서 형성된 거대한 군중은 응집력과 결속력이 점점 강해져 객관적·이성적 판단은 흐려지고, 맹렬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기 쉽다. 더욱이 위기 상황일수록 스타에게 더 애착하고 과도한 숭배와 맹렬한 충성심이 작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성취감도 강해져 그 스타에게 심리적 집착이 더 심해진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집착이다. 이런 팬덤이 정치계에도 오래전부터 번지고 있다.
이제 일반인의 정치 참여는 감정에 의해 주도되게 됐고, 더는 정치적인 이념이나 당파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카리스마가 있거나 매력적인 정치인 개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 정보를 찾고 정책을 분석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그러고는 과도하게 그를 방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팬 활동으로 인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높은 관여감을 경험할 수 있다.
가짜 정보가 난무하고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비난이 심해지게 되면, 여론의 동향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정치의 속성상 결국 정치 팬덤의 요구가 관철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스스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정치적 유능감까지 생기게 된다. 연예인 팬덤과 달리 내 힘으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정치 효능감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사명감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대선에 패배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의회에까지 침투해 폭동을 일으킨 외국의 팬덤 사례도 있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방하는 대상에게 온라인 테러뿐 아니라 오프라인 폭력까지 가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들에 대한 팬덤 문화가 확산, 격화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려는 정치인도 점차 늘어난다. 이런 팬덤은 과한 집착과 열정적인 감정에만 매달려 스스로 사회적 정체감과 정치적 효능감을 키워가면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라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팬덤 정치가 가능할지 많이 우려스럽다.>문화일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시평], 비이성적 ‘정치 팬덤’ 해악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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