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 07:58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우리나라 개헌의 단골 주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란, 내치는 총리가 맡고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등 외치를 담당하는 제도다. 원래 이원정부제가 이러한 정치제도를 일컬어 왔으나, 국내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용어가 더 빈번하게 사용된다. 결선투표제도 당선자의 대표성을 높이고 후보 단일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개헌의 대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구상에 이원정부제이면서 동시에 결선투표제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서는 좌파 대통령과 우파 총리, 또는 우파 대통령과 좌파 총리가 집권하는 좌우 동거 정부의 심각한 갈등을 세 번이나 경험한 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헌을 추진했다.
과거 7년이던 대통령 임기를 5년인 의원 임기에 맞춰 줄이면서 거의 동시 선거를 했다. 그 결과 2007년부터 동거 정부는 사라지고 대신 대통령제와 비슷한 정치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지난 6월 초에 있었던 유럽의회 선거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프랑스 정치를 흔들기 시작했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전했고, 이에 당황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임기 2년 만인 의회를 해산하고 6월 말에 총선을 실시했다.
프랑스에서는 대선뿐 아니라 총선도 결선투표제를 적용하는데,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의 연합이 1위를 차지했다. 2차 투표를 앞두고 2주 동안 극우 세력의 승리를 막기 위해 마크롱의 ‘앙상블’은 좌파 세력과 연대를 꾀했고, 결국 뒤집기에 성공했다. 577개의 하원 의석 가운데 극좌 신인민전선은 188석을 차지하고 앙상블이 161석을 확보했는데, 국민연합은 142석에 그쳤다.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은 원조 극우파인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인종의 순수성을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별일이 아니라고 했다. 마린 르펜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고 아버지를 2015년 당에서 축출했지만, 극우 성향은 서로 다르지 않다.
올해 총선에서 국민전선은 프랑스 땅에서 태어났다고 다 같은 프랑스 시민이라 할 수 없으며, 불법 체류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를 중단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축소하겠다고 공약했다. 은퇴 연령도 마크롱이 64세로 개혁했는데, 62세로 원상 복구하고 연금 축소도 취소하겠다고 한다. 마크롱이 이에 반대하고 중도와 좌파가 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원정부제에서 원래 총리는 의회의 다수당에서 선출된다. 마크롱은 파리올림픽 기간에 신인민전선에서 추천한 총리의 임명을 미루더니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다. 대신 과반수를 확보한 정당이 없다고 마크롱은 극좌와 극우를 제외한 새로운 연합을 시도하는 중이다. 극좌 세력은 자신이 추천한 후보를 총리로 임명하지 않으면 마크롱을 탄핵하겠다고 압박한다.
마크롱이 누구를 총리로 임명하든, 이번 총선은 개헌까지 시도해 대통령과 의회의 선거 주기를 동시화하려던 노력을 허사로 돌린 셈이 된다. 정책 뒤집기와 정치 갈등이 극대화하는 동거 정부의 재출현 가능성도 커졌다.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수 있고 의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이원정부제의 제도적 특징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현실화하는 중이다. 이원정부제가 세계화 시대에 구분도 어려운 내치와 외치의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개헌의 대안으로 삼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상상해 보라. 만약 지금 대한민국이 이원정부제라면 어떨지. 대통령은 2022년에 승리한 윤석열이고 총리는 2024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이다. 양측은 당 대표 선거 뒤 당선 축하 난(蘭)을 가지고도 공방을 벌인다.
대선 이후 2년 넘게 양측은 계속 전면전이고 달랑 한 번 회담했다. 프랑스 선거에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용인하는 극우 정당과 이에 반대하는 마크롱의 앙상블이 있다. 이번 광복절에 ‘친일과 반일’ 구도로 갈라선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비슷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샤를 드골 대통령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두 번씩 의회를 해산했는데 한국은 과연 극단적 갈등을 피할 수 있을까.>문화일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칼럼 시평, ‘분권형 대통령제’ 최악 모델 된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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