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는 죄가 없건만

2024. 11. 6. 05:33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정치를 오리(duck)에 빗대 표현하는 말이 많다.

 

레임(lame)은 영국 증권시장에서 미수금을 갚지 못하는 투자자를 일컬었으나, 1860년대부터는 정치권에 등장했다오리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예를 들어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설명할 때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보통 지지율이 30% 이하가 되면 레임덕에 빠졌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여당과 관계가 껄끄럽고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진다정부의 공무원들은 야당 눈치를 보면서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다.

 

그런데 이보다 조금 더 나빠지면 브로큰덕(broken duck)이라는 말이 나온다노무현 대통령 시절 의욕적으로 제기한 대연정이 여당에서 거부되고 탈당을 요구받은 바 있다.

 

이때는 레임덕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전인 2009년 1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그러나 여당인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이에 언론에서는 부시의 지도력이 사실상 권력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는 취지에서 브로큰덕으로 표현했다.

 

브로큰덕을 넘어서면 이젠 데드덕(dead duck)이라는 말이 나온다. ‘죽은 오리에는 밀가루를 낭비하지 말라는 속담에서 나온 데드덕은 정치 생명이 끝난 사람더 이상 가망이 없는 인사실패할 것이 분명한 정책 등을 말한다.

 

레임덕이나 브로큰덕은 그래도 일말의 회복 가능성이 있지만데드덕은 회생 불능 상태를 말한다보통 지지율이 한 자리로 떨어지면 데드덕이라고 부른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직전 지지율이 5%에 달할 때 언론이 데드덕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지난주 한국갤럽 기준으로 19%, 문화일보 기준으로 17%를 기록했다여론조사 수치로만 보면 레임덕과 브로큰덕 사이에 있다고 봐야 한다지금 윤 정부에 남은 화살은 법률안 거부권과 정부 시행령예산 증액 동의권 정도이다거부권도 벌써 21번이나 사용했다.

 

정부 시행령을 활용한다고 하지만, 4대 개혁을 하려면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의석도 8석만 이탈하면 탄핵소추도 막을 수 없고 거부권도 행사할 수 없다데드덕으로 가지 않기 위해선 국정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문화일보이현종 논설위원.

 

   출처 문화일보오피니언 오후여담레임 덕브로큰 덕데드 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