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긴 글, 다른 곳에 올리느라 작성했습니다

2010. 2. 3. 22:07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우리나라 사람들의 삼성에 관한 호불호는 매우 유별난 것이어서 제가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번에 삼성이 내어 놓은 미러레스 사진기인 NX10은 현대자동차가 1976년에 첫 국산 자동차인 포니를 만든 것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와 사진기를 단순 비교하기는 좀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 사진기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일제 사진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에서 사진기를 만들기 전 까지는 사진기 시장에 명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나라가 독일과 일본뿐이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들 나라의 사진기는 확실하게 짝퉁이었습니다.

삼성이 미놀타와 제휴하여 수동 사진기를 내어 놓은 것이 1979년이었지만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아 결국은 미놀타와 결별을 하였고, 수동 렌즈를 생산하던 삼양광학도 일본의 제동에 걸려 아직까지 자동초점 렌즈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삼성이 자체 마운트의 사진기와 렌즈를 내어 놓은 것은 한국 광학사와 세계 광학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입니다. 요즘에 보면 삼성 NX10에 대한 많은 비난과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사진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잘못된 점을 지적하더라도 애정을 가지고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래 글은 제가 10년 전에 내었던 『사진 없는 사진 이야기』라는 졸저에 실었던 글입니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우리나라 광학의 효시는 1966년에 설립된 ‘대한 광학’이다. 대한 광학이 설립된 1966년 이후 사진기 및 쌍안경의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와, 광학 분야의 기능과 기술 인력을 양성해 렌즈 가공 및 코팅 등 기술 개발을 촉진한 것이, 국내 사진기 산업의 중요 기반이 되었다. 대한 광학은 1976년 국산 사진기 1호인 ‘코비카(Kobika) BC’라는 렌즈 셔터 형식(LS)의 사진기를 만들었고, 그 무렵 세계 쌍안경 시장의 점유율을 25%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종합 광학회사 ‘대한 광학’은, 1983년에 부도가 나서 지금은 옛 이름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다.

 

1970년대 들어와서 방위산업 분야와 관련한 광학기술 개발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일본으로부터 전자, 정밀부품의 가공․조립에 대한 기술 도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밀 광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노력이 커지고 정밀도가 점점 높아져, 일본의 광학기술을 이전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향상되었다. 이때부터 많은 시행착오 끝에 품질 수준을 확보하면서 광학 제품의 국산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것이 ‘삼양 광학’이다.

 

‘폴라(POLAR)'라는 고유상표로 사진기 교환 렌즈와 쌍안경을 만들어 1980년대 중반엔 세계 교환 렌즈 시장의 40% 점유율을 자랑했던 ‘삼양 광학’은, 1992년에 노사 문제로 부도가 나서 현재 법정관리 중이다. 광학 전문회사로 주식시장에 상장됐던 삼양 광학은 그 명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자기 브랜드보다 비비타(Vivitar)같은 저가 렌즈를 주문자 상표로 만드는 하청회사로 전락하고 말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광학 제품은, 초기엔 일본 사람이 설계한 제품을, 일본에서 공급되어 온 원․부자재를 가지고, 일본 기계로 일본 생산 공정대로 생산해서, 일본 사람이 정한 단가로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산업도 일본의 영향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정밀 기술이 필요한 광학 산업은 일본 의존이 더욱 심했다. 그래서 1970년대 후반까지는 우리의 광학 산업이 일본 업체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삼성이 미놀타와 제휴하여 35mm LS 사진기 및 35mm 일안 반사 형식의 사진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1979년이다.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이 미놀타와 전격 제휴했을 때, 일본의 언론들은 ‘미놀타’를 매국노로 규정하고 일제히 비난했었다. 세계 사진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에, 미놀타와 삼성의 제휴는 필연적으로 역부메랑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즉 언젠가 세계 사진기 시장에서 삼성이 일본 제품에 위협이 될 거라는 예측이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면 나의 과장된 생각일까?

 

삼성은 1978년 일본 미놀타사와 사진기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여, 1979년부터 1984년까지 기술을 도입하고, 부품을 조립하여 X-300, X-700 등의 일안 반사 형식 사진기를 판매하면서, 1984년부터 자체적으로 사진기를 개발했다. 삼성에서 처음 나온 독자 모델의 사진기가 렌즈 셔터(LS) 형식의 SF-A이다. SF-A는 자동 초점 형식은 아니지만, 미놀타 렌즈가 장착된 것으로서 상당히 좋은 평을 들었다. 일본 기술이 아닌 삼성 독자 기술로 개발된 모델이 1986년에 나온 수동식 ‘윙키(Winky)’이고, 곧바로 자동식 AF 500이 개발되었으며, 1989년 5월 최초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2배 줌 사진기 ‘AF Zoom 700’이 출시되었다.

 

삼성은, 1991년에 독자 모델 ‘퍼지 줌 1050’을, 1994년에는 세계 최초 4배 줌인 ‘FX-4’를 잇달아 개발하여 출시하였다. 삼성이 개발한 콤팩트 사진기, FX-4는 일본보다 두세 달 빠른 4배 줌 사진기였다. 이후 매년 10여 종이 넘는 줌 사진기를 개발하여, 삼성은 질과 양, 두 가지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사진기 제조회사로 발돋움하였다.

 

삼성은 1996년에 자체 상표인 케녹스(Kenox)로 세계 사진기 시장에 뛰어들어, 98년 독일․영국․네덜란드․스페인 등, 유럽 4개국 고배율 줌 카메라 부문 판매 1위(자료 : 독일 시장 조사기관 Gfk 마케팅 리서치), 1999년 2월 미국 2배 줌 카메라 부문 판매 1위(자료 : 미국 시장 조사기관 INTELECT ASW)를 차지했다. 삼성에서 1994년에 내놓은 ‘FX-4’가 카메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유럽 최고 권위의 TIFA상과 EISA상을 수상한데 이어, 1999년에는 ‘KENOX 1401P’가 이 두 상을 휩쓸어, 현재 세계 시장에서 일제 사진기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진기는 삼성 케녹스 밖에 없다는 찬사를 들었다. 또한, 삼성이 내놓은 케녹스 GX-1은 독일, 일본, 러시아 등에서만 생산되고 있는 일안 반사 형식(S.L.R 사진기) 사진기 시장에, 한국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는 큰 의미를 가진다.

 

삼성은 독일의 롤라이 광학을 인수하여 롤라이(Rollei) 브랜드의 120 롤 사진기 롤라이 6008과, 35mm 사진기 롤라이 35QZ, 롤라이 35 클래식 등도 도입․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삼성의 약진은 삼성이 예고하는 ‘세계 3대 사진기 업체’로의 도약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 일본 업체들과 제휴하여 사진기 시장을 넘나들던 현대, LG, 대우 등은 모두 손을 뗐고, 펜탁스를 수입하는 동원광학, 니콘을 수입하는 아남 인스트르먼스, 캐논을 수입하는 SK 등은, 자체 상표 없이 OEM으로 나가거나 완제품을 수입하여 판매만 하고 있어, 삼성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나는, 삼성의 사진기 산업의 도약을 사진인의 한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더욱 발전하길 바라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피력한다.

 

삼성이 자랑하는 케녹스 줌 사진기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호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이 쓰기엔 조금 부족하다. 그러므로 최고급을 좋아하는 한국 사진작가들에겐 눈에 찰 리가 없다. 거기다가, 고급 전문 기계인 롤라이 6008은 핫셀 블라드에 인지도가 많이 밀리고, 가격도 크게 비싸서 우리나라 시장 점유율이 핫셀과 비교할 때 20 : 1 정도도 안 될 것이다. 고급 기종일수록 한국에서 통하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도 어렵다는 점을 삼성이 꼭 인식해야 한다. 핫셀에 쓰이는 칼 자이스 렌즈보다, 롤라이에 쓰이는 칼 자이스 렌즈가 더 뛰어나고 가격도 비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롤라이 6008이 핫셀에 밀리고 있다면, 롤라이 사진기 자체가 문제거나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것인데 왜 이에 대한 대책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삼성이 롤라이 광학을 인수하고, 첫 작품으로 내놓은 ‘롤라이 35QZ’도 고품질의 바리오 아포곤(Rollei Verio Apogon) 줌 렌즈 장착, 4분할 SPD 센서를 채용한 인공 지능 노출 프로그램, 1/8,000초의 고속 셔터, 촬영 정보 기록 기능, 자동 노출 단계(Auto Bracketing) 촬영, 티타늄으로 외장을 한 견고한 몸체와 수려한 외관 등, 그 자체의 기능이야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렌즈 교환이 안 된다는 점이 치명적 약점이다. 전문가가 쓰는 것들은 렌즈가 교환되는 일안 반사 형식에 최고급 교환 렌즈가 필수이다. 이것은 사진기 세계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일안 반사 형식이 아닌 줌 렌즈 장착의 35QZ를 제작한 것은, 삼성이 ‘롤라이’라는 이름만 믿고,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35QZ는 콤팩트 사진기로 분류하기엔 몸체가 너무 커서 기동성도 떨어진다.

 

이러한 점들을 해결해야, 한국 시장,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명품이 될 것이다. 콘탁스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문제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떨어져 겨우 명맥만 유지되는 이 시점에, 삼성이 롤라이 브랜드로 35mm 일안 반사 형식의 고급 사진기를 만든다면 일제를 제압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일제가 아닌 독일제 칼 자이스 렌즈로 호환되는 롤라이 35mm 일안 반사나, 케녹스 사진기에 독일제 롤라이 렌즈를 호환할 수 있게 삼성에서 만든다면, 일제의 벽을 넘어 라이카와도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삼성에서 내 놓은 일안 반사 형식의 케녹스 GX-1이 우리 시장에 살아남으려면 고급 교환 렌즈가 필수이다. 하지만, GX-1은 보급형 줌 렌즈 두 개만 구비하고 있으니 사진인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똑같은 일제라도 니콘이나 캐논만이 통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가격보다는 고급 이미지가 우선이다. 그 비싼 라이카 렌즈도, 대구경이나 APO 등의 초고가(超高價) 렌즈가 더 잘 팔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진기만은 사진작가가 아닌 일반 사람을 겨냥하여 만들어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문가가 쓰는 것이어야 일반인에게도 인지되기 때문이다.

 

삼성 케녹스가 사진기 시장에서 우리나라 이미지를 높인 것은 자랑스런 일이며,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만든 우리 사진기로 우리 산하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것이, 나의 큰 바람이다. 위에서 중언부언한 것은 경영이나 상업성을 전혀 무시한, 사진인의 소견을 밝힌 것뿐이다.

나는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삼성의 광고를 높게 평가한다. 삼성이 미놀타와 처음 제휴할 때, 삼성이 미놀타에 지불한 기술료가 천문학적 숫자일 거라는 얘기도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삼성이 사진기 시장에 뛰어든 것은 반도체에 손을 댄 것만큼이나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광학기술이 독일이나 일본에 많이 뒤쳐져 있지만, 그나마 삼성의 도전과 노력 덕에 일본을 힘겹게 추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C.C 카메라, P.C 카메라 렌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우리나라가 60% 이상 차지하게 된 것도 여기에서의 기술 축적 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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