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홍쿠우공원의 윤봉길의사 기념관

2011. 1. 29. 17:58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은 관심이고, 만남이며, 사랑입니다

 

 

 

 

 

 

 

 

 

 

 

 

 

 

 

 

 

 

 

  서안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상해 푸동공항에 내렸을 때는 눈이 그쳤지만 지붕위에 하얀 눈이 덮혀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 말에 의하면 상해에 폭설이 내렸다고 하는데 길 위는 눈이 하나도 없어 그 말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상해는 우리나라 제주도보다도 더 남쪽이라는 말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위도 상으로는 분명 제주도 보다 1도가 아래라는데 제주와 같은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아서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간 곳은 상해의 홍쿠우공원, 지금은 뤼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곳이었습니다.

 

 

진눈깨비가 계속 오다말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우리는 무슨 비장한 임무를 가진 사람처럼 뤼신공원 안에 있다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보러 눈을 맞으며 걸었습니다. 공원입장료는 없는데 윤 의사 기념관은 15위안이라고 합니다. 이게 만약 중국사람의 기념관이라면 1위안도 아까워서 돌아섰을 것이지만 우리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더 자랑스러웠던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을 보기 위해 기꺼이 입장권을 사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기념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우라나라 예전의 마을 입구에 있던 서낭당 수준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전각 하나가 기념관이었습니다. 기념관이 너무 좁아서 영정사진에 창이 비치어 사진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안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땅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건물을 2층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정말 몇 사람이 못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공간이라 그 뒤에 가본 뤼신기념관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여서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해댔지만 거기는 남의 땅이니 우리 마음대로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애써 자위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당시 스물다섯의 나이로, 홍쿠우공원에서 거행한 일본 왕의 생일잔치에 도시락폭탄을 던져 주둔군총사령관이던 사라카와 대장, 제 3함대사령관 노무라 중장, 제 9사단장 우에다 중장 등에게 치명적 중상을 입히고 거류민단장은 그 자리에서 폭사시킨 윤봉길 의사는 당시 중국은 물론 세계여론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혹자는 윤봉길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항거할 수 없는 거대 폭력에 맞선 윤봉길의사의 쾌거는 당시 중국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로부터 '100만 중국병사가 하지 못한 일을 윤 의사 한 사람이 이루었다' 는 찬사를 받았고, 이후로 중국정부가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전적으로 후원해주는 큰 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윤 의사의 호가 매헌(梅軒)인데 마침 춘설 속에 붉은 매화가 피어 한층 매헌기념관을 매헌답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나와 뤼신, 그러니까 우리 말로는 노신이지요. 노신기념관을 갔더니, 여기는 삐까번쩍한 것이, 어디 웬만한 국립박물관 수준의 입이 딱 벌어지는 현대식 건물이었습니다. 입장료도 안 받고 으리으리한 것이 괜히 우리 마음을 더 씁쓸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