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0. 13:25ㆍ세렌디피티(serendipity)/좋은 수필 선
우리 바둑이의 그 후
6․25난리 속에서 일어났던 의리 깊은 우리 바둑이와 나 사이의 이야기가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실린 후 여러 지방 소년 소녀들로부터 자주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 다정한 편지들 사연 속에는 그 후 바둑이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벌써 30년이나 지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으므로 그 바둑이가 저승으로 돌아간 지도 이미 오래 됐고 바둑이의 아들딸들의 이야기도 좀 아리송해졌지만 생각나는 대로 그 후의 이야기를 조금 써 두고자 한다.
굶주림과 추위와 절벽 같은 외로움 속에서 꼭 100날을 우리 바둑이는 눈에 덮인 경복궁 뒤뜰 나의 집(박물관 사택)을 지키면서 내가 돌아올 날을 기다려 준 개였다. 100일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바둑이는 지칠 대로 지쳐서 마치 걸레뭉치처럼 쪽마루 위에 늘어진 뼈와 가죽뿐이었다. 부산으로 안고 내려간 후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했지만 한 반 년 지나면서 기운이 되살아나서 수캐들이 늠실거리기 시작했고 바둑이는 머지않아 자기를 닮은 첫 새끼들을 거느린 어미개가 되었다.
바둑이의 아들 하나는 동료이며 술친구인 K박사가 데려가더니 그의 피난살이 집 뜰에 손수 개장을 지어 주어 호강을 하게 되었다.
K박사는 그 개집에 김덕구(金德狗)의 부산 별장이라는 문패를 달아 주었고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피난 시름을 달래는 밝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아들개는 그 후 주인과 함께 한 많은 부산 별장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 때 마침 서울에 환도한 경무대 발바리개 암컷이 그 배필을 구하고 있었으므로 우리 바둑이의 아들개는 경무대 발바리개 배필로 들어갔고 이 이야기는 이미 K박사의 수필로 유명해진 이야기가 되었다.
또 딸개 하나는 젖도 채 떨어지기 전에 경주박물관 C박사에게 보내졌는데 어쩌다가 내가 경주에 가게 되면 어찌 나를 알아보는지 오줌을 찔끔찔끔, 데굴데굴 구르면서 내 얼굴을 미친 듯이 핥고는 했다.
C박사와 술자리를 벌이면 으레 옆에 와 안아서 귀염을 떨었는데 너도 한 잔 같이 하자고 개입에 술을 한 잔 먹여주면 그 술기가 돌아서 비실대는 모습이 그리도 즐거웠다. 어쨌든 우리 어미 바둑이는 그 후에도 셋방살이 이웃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어 귀여움을 받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해 보니 홀연히 온데간데 없어져서 집사람이 울상을 하고 있었다. 이웃 사람들의 말로는 바로 이웃 방에 셋방살이 하는 젊은이가 우리 바둑이를 그토록 탐내서 납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들 했다. 맛있는 것으로 우리 바둑이를 꾀게 시작한 지 벌써 오래 되었으며 전날 저녁 때 그 청년이 싫다는 바둑이를 억지로 안고 택시에 올라타더라는 말도 있었다.
우리 바둑이가 또 기구한 운명에 놓여졌구나 해서 마음이 언짢았다. 그 젊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닷새째 되던 날 우리 바둑이는 거지꼴이 되어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집사람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안아 들였지만 말 못하는 바둑이의 눈길에서 우리는 그 호소를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납치되어 간 집에서 바둑이는 결사적으로 탈출해서 그리운 집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후에 그 저주스러운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지만 우리 셋방으로부터 30리나 떨어진 부산시서면釜山市西面 자기 부모 집으로 데리고 가서 매두었더니 사흘째 가서야 비로소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안심해서 풀어주었더니 풀어주는 순간 거리로 뛰쳐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살던 미아산 밑 토성동 셋방까지는 서면에서 복잡하고도 먼 거리였는데 우리 바둑이는 택시에 태워져서 어둠 속에 끌려간 그 길을 어찌 찾아왔는지 나는 그때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입 안에서 중얼거리는 것으로 뻔뻔스런 납치자에 대한 분노를 삭였다.
그로부터 우리 바둑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저주할 사람의 짓거리가 더없이 노여웠고 그 복잡하고 낯선 길을 집까지 찾아오느라고 겪은 마음과 몸의 고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이 가엾은 바둑이를 가축병원에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 살아날 가망이 없지만 입원시켜 보는 것이 좋겠다 해서 입원시켰더니 나흘 만에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고 개도 개 나름이겠지만 사람보다 더 의리 깊은 개도 있고 개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우리 바둑이는 1948년 2월 나의 친구 H군이 사랑받는 개의 외동딸(한 마리만 낳았다.)로 태어났다.
우리 친구도 개를 그리 좋아해서 이 귀여운 무남독녀 개를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해서 나도 그를 대견히 알아서 주먹만한 어린 것을 오버코트 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1952년 가을 부산 가축병원에서 죽어갈 때까지 4년 반 동안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죽은 우리 바둑이의 생각은 어느 한 사람에게 서린 추억 못지않게 내 마음 속에 지금도 따스하게 살아 있다. 지금 기르고 있는 우리 집 착한 바둑이의 얼굴을 가끔 유심히 들여다보고 앉아 있노라면 죽은 바둑이의 환생인 양 싶어질 때도 있고 그러노라면 개의 눈동자가 무슨 간절한 호소를 하는 듯 느껴질 때도 있다. 사람들 욕 중에 무슨 개 같은 놈이니 개만도 못한 놈이니 하고 개욕을 도매금으로 해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개는 그렇게 부도덕한 짐승이 아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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