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나리오

2017. 4. 1. 20:50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대전 엑스포가 있던 1993년 가을 어느 날, 월드컵축구 예선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본선에 출전을 하려면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가 2점 차 이상으로로 이겨야했고, 일본은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이기거나 비겨야 했습니다.


 사실 그게 가능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여러 사정으로 보아 우리가 본선티켓을 갖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속리산 어느 모텔에서, 대전엑스포를 관람하기 위해 하룻밤을 자야 했는데 학생들은 학생들의 방에서 교사들은 교사의 방에서 그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우리가 북한과의 경기에서 간신히 1점 차로 이기고 있었지만 일본과 이라크가 비기고 있어서 전혀 낙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료 5분 정도를 앞두고 우리가 두 점차로 앞서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이겼습니다.


 비기고 있던 일본이 종료 2분인가를 남기고 이라크에게 한 점을 허용하여 일본이 패하는 바람에 우리가 본선 티켓을 차지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이때 일본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이 '악마의 시나리오'였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분야에서 '악마의 시나리오'라는 말이 많이 나왔지만 스포츠에서처럼 짜릿한 '악마의 시나리오'는 드물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망할 거라는 얘기도 많이 나왔고, 정치에 대한 것들도 많이 나왔지만 그럴듯하게 포장이 되어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다가는 그게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끝나면 사과 한 마디 없이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만 많이 봐오던 터라 요즘은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신경이 안 쓰입니다.


 오늘 저는 악마의 시나리오 한 편을 보느라 가슴을 얼마나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오늘 한화이글스와 두산베어스가 잠실구장에서 2017년 시즌 두 번째 게임을 했습니다. 그 게임이 정말 악마의 시나리오였습니다.


어제 한화가 3 : 0으로 졌고, 오늘 나온 두산 투수는 유희관으로 한화전에서만 7연승을 달리고 있는 한화의 천적이었습니다.


 두 팀이 9회말까지 4 : 4로 비기다가 11회 초에 한화가 두 점을 더 뽑아서 쉽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두산이 11회 말에 한 점을 내고 2사 1, 3루에 선수가 있었고 한화 투수가 흔들려서 오늘도 또 '악마의 시나리오'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11회 말에 두산 4번 타자의 공이 뜬 볼이 되어 한화가 6 : 5로 이겼습니다.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고 좋아들 했지만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은 다 타들어가 재만 남을 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