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드는

2022. 9. 28. 06:35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는 표현을 애용하는 정치인이다.

 

이 대표가 8·28 전당대회 승리 후 지난달 31일 김진표 국회의장을 예방했을 때 김 의장은 “제가 과거 이 대표의 성남시장 선거 지원유세(2014년)를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이 대표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는 연설 내용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꼬리)의 성공이 대한민국(몸통)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 왔다.

 

‘꼬리를 잡아…’, 이른바 왜그더도그(wag the dog)는 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에 의해 현물시장이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통상적으로 주객전도의 경우를 이른다.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사법 리스크’(꼬리)가 공당(公黨)이자 169석의 제1 야당(몸통)을 흔드는 요즘의 민주당에 제격인 수식어다. 꼬리에 의해 몸통이 흔들린 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민주당은 당에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와 ‘대통령실 의혹 진상규명단’을 신설하고 각 조직에 의원들을 대거 동원했다.

 

민생에 공력을 들여야 할 국회의원들이 ‘이재명 보디가드’를 자처하고 나선 형국이다. 앞선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매섭게 질타했던 박용진 의원도 “김건희 여사와 비교해 이재명을 향한 수사의 칼날이 전광석화 같다”며 전선에 합류했다.(문화일보, 이해완 정치부 차장)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2월 보건복지부는 네 가지 방식의 국민연금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국민연금은 현행 제도로 유지하고 기초연금을 월 40만원으로 올리는 내용이었다. 복지부는 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하고 어느 개편안이 적절한지 논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결국 흐지부지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해 절대 다수 의석을 점유한 21대 국회가 시작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야당이 되자 최근 기초연금을 현행 월 30만원에서 40만원 올리는 내용의 기초연금법 개정을 7대 주요 입법과제로 선정하고, 중점 처리하기로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지난 5년 동안 전혀 연금 개혁을 하지 않고 있다가 국회 연금특위가 가동돼 종합적으로 연금을 손보려고 할 때 (민주당이) 인기에 편승해 (기초연금을) 10만원 올리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기초연금을 10만원 올리는 데 연간 12조원의 예산이 더 든다.

 

민주당이 여당일 땐 정부가 부담을 져야 하는 법안을 소극적으로 추진하다가 야당이 되자 갑자기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국민의힘이 비판하고 있다. 이른바 ‘입법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7대 입법과제 중 하나로 꼽고 강행 처리 의사를 보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국민의힘은 그렇게 보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시장 격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정부는 매입비, 보관료, 이자 비용 등에 드는 예산이 만만치 않다며 반대 입장을 낸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때도 정부는 같은 입장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쌀 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쌀 의무 매수엔 반대 입장이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식품부도 “일정 요건 충족시 반드시 (쌀을) 매입하도록 할 경우 시장 동향을 고려하지 않고 매입이 이루어지게 돼 쌀값 급락 방지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용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20·21대 국회에서 쌀 의무 매수 법안은 제대로 논의가 진행된 적은 없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사전점검회의에서 “(민주당은) 농민을 그렇게 위한다면 양곡관리법을 문재인 정권에서 왜 처리 안 했나”라고 물었다.

 

공공의대 설립법(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 제정도 문재인 정부 때 접은 계획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다시 불을 붙인 법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했다가,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자 사실상 계획을 철회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전북을 찾아 “전북 공공의대 설립법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한 뒤로 민주당이 재추진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여당 때도 의료계를 설득 못 해 처리 못 한 법안을 야당이 되니까 처리하려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갈등 조정 부담은 정부·여당이 져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게 국민의힘 판단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주요 입법과제로 선정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왜 집권여당일 때는 왜 법안을 통과 못 시켰나”라고 묻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일종 의장은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 왜 통과 안 시켰나? 문제 있던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못 시킨 것 아닌가”라고 물으며 “야당이 되니까 진영을 결속하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법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윤성민 기자

 

 이러한 현상에 민주당의 한 비명(비이재명)계 의원은 “배가 산으로 가도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압력이 크게 작용해 당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집단사고에 사로잡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예일대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저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에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한목소리에 끌려가다 무모한 실수를 저지르는 현상을 ‘집단사고’라고 정의했다. ‘집단지성’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다.

 

집단사고의 핵심은 ‘집단은 절대로 잘못될 리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집단사고는 결속을 강요하는 집단 분위기, 외부 의견의 철저한 차단, 긴급사태로 인한 위기감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어빙 재니스는 진단했다.

 

잘못된 도덕적 우월성과 집단에 의문을 품거나 이견을 가진 이를 적대하는 성향을 드러내면서 집단 전체가 함께 휩쓸리게 된다는 부작용은 덤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등은 집단사고가 부른 대참사다. 결국, 집단사고는 안 좋은 의미에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악순환을 낳는 개념이며 오늘날 민주당의 씁쓸한 자화상이다.(문화일보. 이해완 정치부 차장)

 

 이제 그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던 사람이 꼬리를 잡혀 몸통이 흔들리게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