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9. 06:09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2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총선 참패로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집권 5년 내내 여소야대 국회서 국정운영을 해야 되는 첫 대통령이 됐다. 거대 야당은 사사건건 국정 발목을 잡을 태세다. 국정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사실상 심리적 탄핵을 당했다.
그만큼 민심이 철저히 등을 돌렸다. 정권의 실패 공식인 불통과 오만이 부른 참사다. 일방통행식 소통과 수직적 당정관계, 야당과의 대화 단절, 국민 눈높이와 거리가 먼 인사, 고개를 숙이지 않는 뻣뻣한 자세는 오만과 불통 이미지를 키웠다. 단단히 화난 국민은 정권을 심판했다.
윤 대통령 위기의 본질은 정치의 실종이자 정치 리더십의 부재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인 동시에 국가의 최고 정치 리더다. 정치력을 십분 발휘해야 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검사를 벗어버리고 정치인으로 변신했어야 했다. 평생 검사인 윤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이해부족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법의 잣대를 앞세운 검사적 사고로는 국민의 감성에 충실해야 하는 정치를 할 수 없다. 임기 초 부실 인사와 정제되지 않은 말, 당 대표를 겨냥한 문자파동, 성난 여론에 맞서는 듯한 자세로 민심 이반을 불렀다. 정치 부재가 부른 화였다.
필자는 취임 6개월 만에 위기를 맞은 윤 대통령에게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주문했다. 매사 낮은 자세로 임하고 쓴소리를 즐겨야 하며 사과를 두려워해선 안된다는 게 핵심이었다. 한마디로 정치인 윤석열이 돼야 한다는 충고였다.
정치인은 검사와는 다르다. 검사의 상대는 범죄 혐의자다.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캐묻는 직업이다. 갑의 위치에 있다보니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익숙치 않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는 정반대다. 국민의 궁금증에 답하는 자리고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정치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말의 예술이다. 대통령의 말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
임기 2년이 돼가지만 윤 대통령은 달라진 게 없다. 용산발 총선 악재들은 정치인 윤석열이었다면 다 막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임명만 해도 그렇다. 이 대사 임명은 법적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정치의 핵심인 국민의 감성을 무시한 것이다. 총선 직전에 상상할 수 없는 무모한 헛발질이었다.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경질에도 6일이 걸렸다. 정치적 사고를 했다면 발언의 심각성 여부를 떠나 당장 경질했을 것이다. 실기하는 사이 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엄청난 역풍을 몰고온 '875원 대파' 발언은 대통령의 말의 무게를 간과한 뼈아픈 실책이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에 대한 당의 공세적 대응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물러나라는 발상은 정치인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다. 총선 후 비공개 국무회의 사과도 정치의 본질에 어긋난다.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수시로 숙이는 정치인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을 한다. 취임 후 처음이다. 이 대표가 8차례 영수회담 제의를 했으나 거부했다. 범죄 혐의자와는 만날 수 없다는 검사적 사고의 결과다. 정치적으로 접근했다면 한참 전에 만났을 것이다. 어차피 여소야대 국면서 거야의 협조가 없으면 정국운영이 불가능하다.
애당초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윤 대통령의 뒤늦은 회담 제의는 총선 참패에 떠밀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회담 주도권도 당연히 이 대표에게 넘어갔다. 명분과 실리를 다 놓친 회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늦었지만 정치를 시작한 건 다행이다. 중요한 건 회담에 임하는 자세다. 정치인 윤석열로의 변신을 보여주는 자리여야 한다. 국민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의 양보카드를 들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총리 추천 제의도 한 방법이다. 국민에게 협치의 희망을 주는 자리가 돼야 한다.
겹겹의 위기서 벗어나기 위한 보여주기식 만남이 돼선 곤란하다.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이 '정치인 윤석열'의 성공적 데뷔무대가 되길 바란다.>디지털타임스. 이재창 부국장 겸 정치정책부장
출처 : 디지털타임스. 오피니언 [이재창 칼럼], 영수회담서 `정치인 윤석열` 보여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