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

2024. 6. 19. 05:52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
()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사랑하여 여러 마리를 길렀다. 저공은 원숭이들의 뜻을 알 수 있었으며, 원숭이들 역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은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 가면서 원숭이의 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먹이가 떨어져 가서 앞으로 그 먹이를 줄이려고 했으나, 원숭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먼저 속임수를 써 말했다.

 

너희에게 도토리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만족하겠느냐?” 원숭이들이 다 일어나서 화를 냈다.

 

저공은 바로 말을 바꾸었다. “너희에게 도토리를 주되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만족하겠느냐?”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하였다.(宋有狙公者, 愛狙, 養之成羣. 能解狙之意, 狙亦得公之心. 損其家口, 充狙之欲. 俄而匱焉, 將限其食. 恐衆狙之不馴於己也, 先誑之曰, 與若芧, 朝三而暮四, 足乎. 衆狙皆起而怒. 俄而曰, 與若芧, 朝四而暮三, 足乎. 衆狙皆伏而喜.)

 

이 이야기는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나온다. 열자는 이 이야기를 쓴 뒤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사물이 지혜로써 서로를 속이는 것이 다 이와 같다. 성인은 지혜로써 어리석은 군중들을 속이는데, 역시 저공이 지혜로 원숭이들을 속이는 것과 같다. 이름과 실상을 훼손하지 않고 그들을 기쁘게도 하고 노하게도 한다.(物之以能鄙相籠, 皆猶此也. 聖人以智籠群愚, 亦狙公之以智籠衆狙也. 名實不虧亏, 使其喜怒哉.)

 

여기서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지금 이재명의 연금개혁이 바로 조삼모사인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서 그게 마치 대단한 개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원숭이가 너무 많다는 얘기입니다.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재명 대표가 무슨 결단을 내렸다는 둥, 개혁의지가 있다는 둥, 부화뇌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연금개혁 논의를 보면서 프레임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다.

 

프레임은 검은색을 흰색으로도 바꾸는 고약한 힘을 지녔다. 지난달 말 소득대체율 44%에 합의하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한마디가 연금개혁의 판세를 뒤집었다. 통 크게 양보한 듯한 모양새가 됐다.

 

민주당은 연금개혁에 찬성하고, 정부와 국민의힘은 반대한다는 프레임이 짜였다. 앞으로 연금에 문제가 생기면 21대 국회 막판에 머뭇거린 정부·여당이 책임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정부·여당은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동안 이 대표는 연금개혁에 큰 관심이 없었다. 대선 때도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지난 2년간 민주당이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법안에 연금개혁이 포함된 적도 없었다. 이 한방으로 단숨에 연금개혁의 칼자루를 쥐었다. 정략적 셈법에 관한 한 확실히 고단수다.

 

이 대표가 받아들이겠다는 안은 보험료율 913%, 소득대체율 4044%로 올리는 것이다. 보험료율은 내는 돈(기준소득 대비), 소득대체율은 받는 돈(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이다. 기다렸다는 듯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이 원 포인트 본회의라도 열어 처리하자고 거들었다.

 

연금 전문가는 물론 상당수 여당 정치인, 언론이 가세했다. 반대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분위기였다. 어느새 이 안이 연금개혁의 정답으로 자리 잡았다. 22대 국회에서도 그대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주장은 ‘26년째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 일부에선 역사적 합의라고 치켜세웠다. 얼핏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문제가 있다. 보험료율 인상만 강조했지, 소득대체율을 44%로 올리는 게 개악이라는 점은 쏙 뺐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율 인상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한다. 더 내고, 더 받는 건 하나 마나 한 개혁이다. 일종의 속임수다. 미래 세대가 어떻게 되든 기성세대는 큰 손해를 안 보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소득대체율을 올리기 시작하면 훗날 내리는 건 힘들다. 나쁜 선례가 된다.

 

연금개혁의 목표는 기금 고갈을 막는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기금은 2055년 바닥난다. 1990년생 이후는 연금을 붓기만 하다가 끝날 수 있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로 조정하면 고갈 시기를 2064년으로 9년 늦춘다. 9년으로는 부족하다. 한번 고칠 때 제대로 고쳐야지, 언제 또 손볼지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려면 보험료율을 19.8%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로 동결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로 연금 고갈은 전 세계의 고민거리다. 각국은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하고 있다. 보험료율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내린다. 가입기간을 늘리고, 수급 연령을 늦추고 있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며 역주행하는 국가는 없다. 소득대체율 인상을 개혁이라고 떠드는 나라는 더더욱 없다. 우리도 40년에 걸쳐 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2028년 기준)까지 낮춰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토론 때 소득대체율 인하에 대해 용돈 연금을 만들 거냐고 반대했다. 집권 후 소득대체율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소신을 바꿨다.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난 점이다. 반발을 무릅쓰고 40%로 내리는 안을 관철시켰다. 44%로 다시 올리면 전 세계로부터 한국은 요술 방망이라도 숨겨 놓았느냐는 조롱을 들을 것이다.

 

결국 잘못된 안을 갖고, 야당은 빨리 처리하자고 기세등등하게 다그친 셈이다. 정부·여당은 넋 놓고 있다가 주도권을 빼앗긴 채 우왕좌왕했다. 기껏 내놓은 반박 카드가 모수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과 구조개혁(국민·공무원·기초연금 조정)을 같이하자는 것이다.

 

집권 2년 내내 손 놓고 있다가 갑자기 구조개혁을 들고나온 건 궁색하다. 구조개혁은 정권 후반기에 어렵다. 현실성이 없는 것을 갖다 붙이면 연금개혁을 하기 싫어서 그런다는 오해만 산다.

 

정부·여당이 끌려다니는 건 목표나 입장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구조개혁으로 물을 탈 게 아니라 소득대체율 인상은 안 된다고 맞서야 한다.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40%로 동결하자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해놓고, 다음에 보험료율을 13%보다 더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보다 낮춰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일본은 보험료율 18.3%, 소득대체율 33%. 우리보다 두 배를 내고, 덜 받는다. 덕분에 100년 동안 지급할 돈을 쌓아두고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데 속 좋을 사람은 없다. 다들 표 계산을 하면서 개혁하는 시늉만 내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말처럼 인기 없는 정책이다. 정부·여당이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내리는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다.

 

이 걸 이 대표가 받아들인다면 연금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해 줄 만하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젊은이에게 빚을 떠넘겨선 안 된다. 여기에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중앙일보. 고현곤 편집인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은 속임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8일 대북송금 의혹 수사에 대해 보도한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으로 표현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시간 제약 등으로 일부 언론의 문제임을 좀 더 선명하게 표현하지 못해 언론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하게 했다면 저의 부족함 탓이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늘 하는 방식으로 아침에 한 말과 저녁에 하는 말이 다른 것은 그의 주특기이지만 이런 게 바로 조삼모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대다수 언론인들이 감시견의 책무로서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잘 안다"며 이같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언론과 언론인들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론직필에 늘 감사한 마음"이라며 "언론단체의 성명도 애완견 행태를 보이는 잘못된 언론을 비호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다만 이 대표는 유감 표현에 그치지 않고, 언론 내 받아쓰기 풍토가 여전하며, 일부 기자들은 '워치독'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우선 한바탕 욕을 해놓고 여론 추이를 보면서 사과 비슷한 말을 하면서 또 다른 곳에 가서는 그게 진심이 아니고 농담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원숭이만 속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원숭이를 탓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모든 책임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천하흥망 필부유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