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전어

2024. 10. 1. 08:35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옛 문헌에 전어는 화살 전(·정약전 자산어보’)을 쓰기도돈 전(·서유구 임원경제지’)을 쓰기도 했다.

 

바닷가에선 화살 한 묶음처럼 열 마리씩 묶어 팔던 값싼 생선이지만내륙 도읍에선 비단 한 필 값에도 사먹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연간 십 수만t씩 잡히던 1980년대만 해도 해안지방에서 다른 생선을 사면 덤으로 주는 箭魚였는데, 2000년대 며느리 컴백’ 마케팅과 함께 각지의 전어축제가 성황을 이루며 錢魚의 입지를 다져 왔다.

 

전어구이는 한국과 일본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입맛을 보여주는 대표적 요리다일본인은 전어 굽는 냄새를 왠지 역하다고 여겨 주로 초절임이나 초밥을 해 먹는 반면한국에서 집 나간 며느리는 회도무침도 아닌 전어 기름이 타는 그 냄새에 돌아온다.

 

이에 일본에선 봄에 잡히는 어린 전어를 최고로 치지만우리는 가을 전어란 말을 고유명사처럼 쓰게 됐다여름 바다에서 부지런히 먹이활동을 해 살이 통통히 붙고 기름이 차오른 9~10월 전어를 가장 맛있게 여긴다.

 

그런데올해 전어 소식은 우리가 알던 가을 전어의 상식을 깨뜨렸다. 8월 남해의 햇 전어는 뼈째 썰어 회로 먹던 것인데올해는 이 여름 전어에 벌써 기름이 차올라 가을 전어처럼 구이로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정작 9월이 돼서는 연안에서 전어가 잡히지 않아 전어축제마다 울상을 지었다.

 

어획량이 작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전어 식당에 전어 없어요’ 안내문이 붙었고물량이 달려 대하와 묶어 파는 전어세트’ 메뉴가 보편화했다전어세트를 시켰는데 그날 전어가 안 들어와 대하만 잔뜩 먹었다고 아쉬워하는 후일담이 많다.

 

며느리 대신 전어가 집을 나가버린 상황은 수온 탓이었다. 21~25도의 바다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9월 내내 30도 가까이 고수온이 지속된 연안에서 어군을 형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몇 년째 이런 추세라니이러다 명태나 오징어처럼 기후변화 실종어(대열에 전어도 합류하게 생겼다.

 

내일부터 진짜 가을바람이 분다는데바닷물이 좀 식으면 집 나간 전어가 돌아오려나.>국민일보태원준 논설위원 GoodNews paper

 

  출처 국민일보오피니언 칼럼 [한마당집 나간 전어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7683096&code=11171211&sid1=c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