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일본인의 쓸쓸했던 추석

2024. 10. 2. 05:46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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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오후망우역사문화공원 산책길을 걸었다서울에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까지 역대 가장 늦은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

 

‘2024년 뒤끝 더위’ 속에 가을저녁’(秋夕)이 무색했다흠뻑 젖은 등허리의 땀을 식히기 위해 망우산 고갯길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섰다저 멀리 한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바로 이곳에 섰다.

 

지금의 구리시 건원릉’ 묫자리를 친히 답사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이었다그러고는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라고 경탄했다 하여 이곳을 망우리’(忘憂里)라 이름 붙였다.

 

다시 망우산 숲속 사잇길을 짚어 내려가는데봉긋이 솟아오른 봉분마다 성묘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깊이 뿌리 박힌 잡초를 솎아 내고 흙탕물로 가려진 비석을 닦아 내는 손길이 분주하다정성껏 차려 놓은 차례상 위에는 커다란 아이스아메리카노딸기 생크림케이크시원한 팥빙수가 등장했다.

 

홍동백서 따지는 엄격한 차례문화는 지나간 지 오래살아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기호품을 준비하는 게 요즘 조상 섬기는 문화다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손주가 조막만 한 손으로 차례상 팥빙수에 숭덩 담근 손을 얼굴에 대고 문지르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번져 나간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오랫동안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렸다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개원했으니 그 역사가 깊다이 땅에 묻힌 2만 8000여명의 육신이 흙에서 꽃으로이슬로바람으로 흩어진 시간이다이름난 독립운동가와 소설가시인정치인 등의 안식처이기도 한데 공원 초입에 안장된 유관순 열사부터 만해 한용운소파 방정환을 지나 도산 안창호의 묘소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곳에서 두 명의 흥미로운 일본인 이름을 발견했다한 명은 아사카와 다쿠미또 하나는 사이토 오토사쿠.

 

아사카와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한파 일본인으로 조선총독부 임업연구소에 근무하면서 광릉수목원을 조성한 인물이다종자 채집을 위해 조선 땅을 돌아다니던 그는 조선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졌다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조선 공예를 소개한 것도 그였다야나기 무네요시는 아사카와가 수집한 공예품들에 매혹됐다.

 

해방 이후 다른 일본인들과 다르게 아사카와와 야나기 무네요시는 자신들이 수집한 공예품 3000여점 전부를 한국 정부에 기증했고 이는 우리 공예연구의 밑거름이 됐다월급의 대부분을 가난한 조선인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정도로 교감을 나누었다는 아사카와 다쿠미의 인생은 백자의 사람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사이토 오토사쿠는 일제강점기 산림 정책의 총수로조선 임야 수탈의 지휘자이자 조선 임업의 설계자로서 공과가 나뉘는 인물이다생을 다하고 다시 일본으로 가는 대신 이 땅에 묻힌 쓸쓸한 두 일본인의 묘소를 바라본다.

 

저 일본인들의 후손은 먼 한국 땅에 묻힌 조상을 잊지 않았을까잊지 않았다면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서울신문최여정 작가

 

  출처 서울신문오피니언, [최여정의 아침 산책두 일본인의 쓸쓸했던 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