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4. 06:49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오판과 편견
<조금 과장을 보태면, 지금의 중동전쟁을 예고한 전조는 빵이었다.
가자전쟁부터 이스라엘-이란 전면전 위기까지 일련의 사태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테러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보다 1년 반 전, 2022년 4월 6일 이스라엘 국회의원 한 명이 돌연 탈당을 선언한다.
당시 집권당 야미나의 원내대표였던 이디트 실만은 하메츠(누룩으로 발효시킨 빵)를 문제 삼았다. 유월절엔 하메츠를 안 먹는 유대교 관습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당을 떠났다. 크네세트(국회) 120석 중 61석, 단 한 석 우위로 아슬아슬 유지되던 집권연정은 그의 ‘빵 탈당’에 깨지고 말았다.
그 연정에는 의석을 가진 13개 정당 중 8개가 참여하고 있었다. 아랍계 소수당까지 긁어모아 부패 혐의로 기소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몰아내고 정부를 구성했다. 2년간 4차례나 총선을 치른 혼란 속에서 네타냐후 12년 장기집권을 끝내자는 목적 하나로 이념을 넘어선 타협의 연대가 빵을 내세운 정치 행위에 무너진 것이다.
현지 언론은 탈당 이면의 거래를 파헤치는 기사로 도배됐다. 네타냐후(리쿠드당)가 실만에게 장관직을 제안해 그 협상을 실만의 남편이 주도했다고 알려졌는데, 정말 그리됐다. 몇 달 뒤 총선에서 실만은 리쿠드당 후보로 당선됐고 네타냐후 정부 출범과 함께 보건장관에 발탁됐다.
그 선거에서 네타냐후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총리에서 물러나며 면책특권을 잃어 감옥에 가게 될 판인데, 정당 열셋 중 여덟이 반(反)네타냐후 진영을 형성한 터였다. 남아 있던 극단적 시오니즘의 극우정당들과 손을 잡았다. 과격한 노선 탓에 역대 정부에 끼지 못했던 이들이 네타냐후 정부의 안보장관 등 요직을 맡았다. 2022년은 유월절(유대교)과 라마단(이슬람)이 같은 달에 겹쳐 있었다.
당시 연립정부는 충돌 위험을 줄이려 가자지구 규제를 완화하며 유화책을 폈다. 이런 기조는 극우파가 득세한 네타냐후 정부에서 180도 바뀌었다. 극우 장관이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에 조롱하듯 찾아가고, 무장경찰이 2023년 라마단에 이슬람 사원을 수색하는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암묵적 공존의 룰이 하나둘 깨져 나갔다.
네타냐후는 재집권 후 자신의 부패 혐의를 재판하는 사법부 무력화에 나섰다. 대법원의 총리 탄핵을 의회에서 무효화하고 법관 임명까지 의회가 좌우하는 ‘방탄 입법’을 강행했다. 그의 ‘셀프 무죄’ 선고도 가능한 조치에 거센 반정부시위가 일었다.
수십만 시위대와 경찰이 맞서는 혼돈 상황은 입법이 시작된 2023년 2월부터 끝내 통과된 7월을 지나 가을까지 계속됐다. 공무원이 시위에 나서고 예비군이 복무를 거부하고 현역 군인마저 동요한 극도의 분열상을 서방 언론은 사실상 내전 상태라 표현했다. 바로 그 끝자락이었다. 하마스의 기습 테러에 당한 건. 모사드도, 8200부대도, 국경 부대도 알아채지 못했다.
네타냐후는 지난 선거에서 줄곧 안보를 외쳤다. “테러집단은 강한 힘에 고개를 숙이고, 약한 모습엔 고개를 쳐든다.” 가자지구를 초토화하고 헤즈볼라를 유린하고 이란의 공습을 끄떡없이 막아내는 데서 보듯,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정보력은 주변국을 압도한다. 이런 전력은 단시간에 생기지 않으니 작년 10월에도 그렇게 강했을 텐데, 당시 하마스는 과감히 고개를 쳐들었다.
약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전에 가까운 국론 분열과 혼란이었고, 이는 망가진 정치가 초래한 일이었다. 속수무책 당한 이스라엘의 보건장관 실만은 테러 부상자를 위로하러 병원에 갔다가 가족들에게 쫓겨나면서 이런 말을 들었다. “당신이 이 나라를 망쳤어!”
정치가 망가진 나라의 국민은 1년째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종전이 네타냐후의 정치생명과 맞물린 터라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다. 국민을 전쟁에 내모는 정치로부터,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 엊그제 국군의날 대통령은 “평화는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 했는데, 하마스가 강한 이스라엘에서 보았던 약함, 정치적 분열과 혼란이 초래하는 힘의 구멍이 우리에겐 생기지 않을까.
돌아보면, 지난 2년 반은 야당 대표와 영부인의 사법리스크를 놓고 두 진영이 치열하게 싸운 정치적 내전 상태였다. 이제 ‘10월 정권 위기설’ ‘11월 야권 위기설’이 나란히 제기되며 정점을 향해 가는데, 그 갈등을 수습해낼 능력을 한국 정치는 갖고 있을까. 중동의 화약고를 들여다보자니, 자꾸만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국민일보.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태원준 칼럼], 망가진 정치가 부른 전쟁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7937230&code=11171394&sid1=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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