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0. 05:44ㆍ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
“혐의없음”은 불기소처분이나 불송치처분의 하위 개념으로, 수사 결과 피의자가 의심받던 범죄 행위가 없었거나, 그가 실제로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경찰이나 검찰 모두 A 씨가 고소된 혐의에 대해 법적으로 잘못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넘기기 전에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 ‘불송치처분’이고,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았지만, 기소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불기소처분’ 그리고 수사 결과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된 경우가 ‘혐의없음’입니다.
문제는 법적으로 ‘혐의없음’이라고 해서 그게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덕철학을 가르치던 막스 셸러에게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내세우는 윤리 기준에 맞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셸러가 답했다. “방향을 지시하는 도로표지판이 표지하는 곳으로 가고 있는가?”
후학들은 이 답변을 놓고 “윤리학이 곧 실천까지 말하진 못한다.”거나 “개인 신념과 양심이 도덕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때도 있다”는 등의 주석을 단다. 깊은 뜻이 있겠으나 아무래도 군색한 답변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매사 언행일치가 자신 있었다면 선문답할 이유는 무언가 싶은 것이다.
제자 앞에서 아무래도 성인(聖人)이 되진 못한 20세기 대표 철학자의 일화를 읽으며 언젠가 신임검사들 앞에 서 있던 대통령이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2020년 8월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해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라고도 말했다. 공개된 발언 전문에는 ‘법의 지배’가 영어로 병기됐고, 신임검사들을 향한 당부였건만 왜인지 정치권이 뒤집어졌다. 당시 총장의 뜻을 아는 검찰 고위 간부들은 “법의 지배를 말씀하신 것은 곧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방편으로서의 법이나 법 기술 따위가 아니라 헌법과 정의로서의 법치를 신임검사들에게 강조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사법을 이용한 정치, 선출된 권력의 지배 따위의 말들이 자연스럽게 반대편에 놓였다.
게으른 기자조차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시는 조국과 울산 수사의 이듬해, 법무부 장관이 총장의 채널A 사건 수사지휘권을 배제하고 국회가 검찰 수사권 조정을 언급하던 시절이었다.
검찰을 흔드는 많은 일이 나름의 규범을 갖춘 ‘민주적 통제’로 소개됐으나 법조계에서는 “과연 무엇이 법치냐”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여론은 형식보다 내용, 조문보다는 덕성, ‘해도 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묵직하고 거침없이 말한 사람 편이었다. “총장이 못할 말 한 것도 아닌데, 화가 났다면 제 발 저린 격”이라고 말해준 법조계 원로도 있다.
지금 ‘법의 지배’는 가리켰던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이제 높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는 “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 있다. “해도 되는 일 아니냐” 따진다면 나름의 질서들을 간단히 부정할 순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원 두 명으로 의결하는 것에 법적 문제는 없었다. 독립기념관장의 인선도, 대통령실 출신들이 이런저런 기업의 감사와 고문이 돼 일하는 것도 법과 절차에 따라 가능했다. 대통령 부인이 총선을 두고 누군가와 연락을 나눴더라도 ‘컷오프’였으므로 공천개입이라 말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그리고 그가 고가의 선물을 받았더라도 처벌할 법 조항이 없으므로 애초 무혐의가 명백했다.
이것들을 “해야 하는 일이냐” 묻는다면 긍정할 수 없다. 법이란 애초 사회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있다. 덕의 배경이 희미해지는 그 경계선에서 “해도 되는 일 아니냐” 항변하는 장면을 보면 깊은 뜻들이 있겠으나 아무래도 군색한 답변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표지한 방향으로 걷지 못한 채 인간적 현실을 끌어안고 서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룰 오브 로’나 ‘룰 바이 로’ 같은 멋진 말을 알아들어서 박수를 보냈던 것이 아니다. 영부인을 처벌할 법이 없었듯 그가 사과해야 할 법도 없을 것이다. 다만 법을 넘어선 고뇌가 늘 사회의 품격을 만들어 왔다..국민일보.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오피니언 [뉴스룸에서], 법의 지배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8352190&code=11171222&sid1=col&sid2=1222
<“처벌 규정 자체가 없는 등 혐의 없음이 명백한 사안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 무혐의 처분에 대해 3일 대통령실이 내놓은 입장이다. 법리로만 보면 맞는 얘기일 수 있다. 청탁금지법엔 공직자 배우자 처벌 규정이 없다. 300만 원 이상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아도 배우자는 처벌되지 않는다. 공직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배우자의 금품 수수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돼야만 처벌된다. 검찰은 판례 검토 결과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리에 충실하다고 설득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국민은 초등학생 자녀 선생님께 스승의 날 선물도 드리지 못한다. 그런데 대통령 부인이 명품 가방을 선물 받은 게 “혐의없음이 명백한 사안”이라니. 백번 양보해도 대통령실의 입장으론 부적절한 표현이다.
그다음 날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선 여당 의원 최소 4명이 찬성·무효·기권으로 이탈했다. 여당 초선 의원은 “단일대오를 무너뜨린 건 다름 아닌 대통령실의 태도”라고 꼬집었다.
여론 눈치를 살피지 않고 법리를 따지는 ‘리걸 마인드(legal mind)’는 검사에겐 미덕일 수 있으나, 정치인에겐 결격 사유다. 민심에 귀 기울이는 게 정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민심은 권력자 가족에 유독 엄격하다. 과거 YS·DJ 같은 큰 정치인이 가족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법리의 보호막을 스스로 내려놓은 이유다.
DJ는 2002년 미국에 머물던 막내 김홍걸씨의 비리 연루 의혹이 불거지자, 부속실장을 통해 “수사에 성실하게 응하라. 죄가 있으면 받으라”라고 지시했다. 귀국 후 구속까지 단 이틀 걸렸다. 대통령이라고 왜 비통함이 없겠는가. DJ는 회고록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고 적었다.
YS는 더 독했다. 1997년 2월 차남 김현철 씨를 26시간 조사한 대검 중수부가 혐의 입증에 실패하자, 수사가 미진한 게 아니냐고 검찰총장을 질책했다. “아버지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일 수 있으나, 대통령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게 오인환 당시 공보처 장관의 회고다(『김영삼 재평가』).
청와대는 대검 중수부장을 교체했고, 검찰이 김씨를 별건 수사로 구속하는 걸 용인했다.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면 때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8일 김 여사에 대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을 제출했다. 후보자 추천 과정에 여당을 배제하는 국회 규칙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다. 특검법을 또 발의한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법리로만 다투면, 손에 든 패가 많은 쪽은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다.>중앙일보. 오현석 정치부 기자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리걸 마인드와 국민 눈높이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3004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 불기소 처분과 관련해 "혐의 없음이 명백한 사안"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영부인의 경우 처벌 규정 자체가 없는 등 혐의 없음이 명백해 최초 중앙지검이 불기소 의견으로 대검에 보고했던 건"이라며 "다만 대검이 국민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했고 수심위는 최재영의 의견서까지 함께 검토한 후 만장일치로 불기소 처분을 의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경찰이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여러 말이 많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법적으로 ‘혐의없음’이 맞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법적’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괘씸죄로 알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괘씸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경찰이나 검찰이 ‘혐의없음’으로 밀고 나갈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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