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6. 19:37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사진을 찍는 일은 참 즐겁다.
사진을 찍으면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첫 번째가 찍으러 나갈 때의 기대감이다. 그 두 번째는 찍을 현장에 도착해서 사진기에 렌즈를 장착하고, 파인더 속으로 찍을 물체를 확인하며 셔터를 누를 때의 흥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필름이 현상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설렘이 그것이다.
나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하는 즐거움이 있다. 맘에 드는, 꼭 갖고 싶었던 사진기나 렌즈를 어렵게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사진 찍으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흐뭇한 교류가 그것이다. 거기다가 직업이 아닌 취미이기에 오는 여유 등이,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얻는 또 다른 기쁨과 즐거움이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오랜 시간 논쟁이 되어 왔지만 나는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사진을 찍을 뿐인데 거기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사진 찍는 것이 즐겁다. 내가 찍는 대상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주로 찍는다. 그리고 예쁜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도 내가 찍기 좋아하는 대상이다.
사진의 소재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사람일 것이다. 천진무구한 아기의 미소, 동심의 세계를 보여주는 어린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어른들, 세월의 흐름을 안고 살아온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은 사진의 영원한 대상이고 본질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소재로 삼는 사진은, 아는 사람들 빼고는 거의 찍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사진에서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상적이고 슬프고 초라한 사람들뿐이어서, 나는 그러한 사진을 찍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인기 연예인의 얼굴 사진(portrait)이나 달력의 비키니 차림의 미녀를 빼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얼굴들이 대부분인 사람을 찍은 사진은, 그들이 사진으로 찍혀서 공개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초상권(肖像權)의 문제를 떠나서, 사진인 스스로가 아픈 상처를 몰래 찍는 비열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 사진은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사진에 찍히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찍고 싶지도 않다.
나는 어두운 사진보다는 밝고 아름다운 사진을 더 좋아한다. 이것은 사람의 사진도 마찬가지여서, 밝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진은, 어둡고 슬픈 사람들의 사진보다 좀 낫게 생각된다. 그래서 내가 굳이 사람을 찍는다면 전자의 것을 찍을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에 도시 사람보다는 자연을 가까이 접할 시간과 기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거기에 관심도 없었고, 그것들이 싫어서 밖에 나가기보다, 집안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라지만, 예전에는 누가 취미를 물으면 책읽기라고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사진기를 손에 잡으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싫어했던 자연 속을 누비게 되고,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다. 최남선 님이 그의 명저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말씀했던 것처럼, 이 땅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 애정을 쏟으면서 그것들을 신앙으로 생각하며 그것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
꼭 사진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약간의 역마살이 끼여 있다고는 하지만 난 좀 심한 편이다.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잔다. 그러니 사진이 내게는 딱 맞고 또 즐거울 수밖에…….
‘사진’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가 아니다. 이미 고려시대에도 초상화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고 <이규보(李奎報)의「달마대사상찬(達摩大士像贊)」>, 조선후기의 실학자 정약용(1762 - 1836)의 글,『칠실관화설(漆室觀畵設)』에 사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글에 보면, ‘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화가들이 그림 그릴 때 보조기구로 사용하는 카메라 옵스큐라와 매우 비슷한 원리를 설명하고 있어, 사진술의 기본 원리가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사진을 나타내는 영문표기인 '포토그래피(photography)'가 1839년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므로 정약용이 사진이라는 말을 쓴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진’이란 말은 ‘포토그래피’의 뜻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사진’은 ‘참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는 의미이고 ‘포토그래피’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서 사진이라는 용어를 오늘날과 같이 사용하게 된 것은 1863년 사절단으로 중국에 다녀온 이의익(李宜翼) 일행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당시 러시아인이 경영하는 사진관에 가서 직접 사진을 찍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사진이란 용어를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나 사진은 밖에서 들어온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이 만들어진 말도 아니며, 사실성을 갖는 전통 초상화를 지칭하는 말에서 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본도 ‘사진’이라는 말을 쓰지만 일본에서 통용되는 ‘사진’은 일본식 한자어가 아니고 우리와 같은 말이다. 중국은 시앙 피엔(相片) 또는 쟈오 피엔(照片)이라 쓰고 있어 우리와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사진의 반밖에 안 된다. 자기가 찍은 필름을 스스로 현상, 인화까지 해야 비로소 사진을 만드는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찍는 것만으로도 바쁘니 언제 암실에 틀어 박혀 일할 시간이 있단 말인가? 그저 찍어서 현상소에 맡기는 것만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사진작가가 아니며, 또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흑백 현상과 인화는 배우는 것도 어렵지 않고 시간만 주어지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칼라 네가 필름과 칼라 슬라이드 필름은, 현상 약품과 기자재가 있다고 해서 쉽게 될 일이 아니라는 것,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스스로 사진을 찍으며 현상하고 인화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부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것이 부질없는 욕심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기에, 나는 찍는 것만으로도 흡족할 뿐이다.
사진을 찍는 일은 즐거운 것이지만 그것이 항상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해 일출을 보려고 밤새워 차를 타고 갔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돌아온다거나, 오가는 길에 차가 막혀서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서울에 도착하지 못해 마음 졸이는 일, 예전 기억으로 여러 사람을 안내하여 갔더니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려 아무 것도 없을 때의 허무함, 정말 좋은 사진 찍었다고 설레며 기다렸다가 빼어보니 노출이 엉망이 되었거나 흔들린 사진으로 나왔을 때, 때로는 너무 더워 땀이 줄줄 흘러 사진기를 꺼내기가 망설여지고, 때로는 너무 추워 사진기에 손이 달라붙는 것 같을 때의 당혹감, 이런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일들은 사진을 찍는 일에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자주 반복되면 사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내겐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사진을 못 찍고 그냥 돌아온대도 나가는 자체가 즐거울 때가 많다.
어느 책에서 보니까, 낚시를 즐기는 분이 20년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의 낚시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다녔다는 얘기가 있었다. 정말 그건 대단한 일이다. 매주 등산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고 들었지만, 등산도 아닌 낚시를 어떻게 20년 동안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갈 수 있단 말인가. 등산은 달랑 떠나면 되지만 낚시는 장소 선정과 준비물이 여간 까탈스런 것이 아닌데 정말 경이로운 얘기다. 사진도 낚시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그렇게 할 수 있을는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니 피곤하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가정과 직장의 행사가 줄줄이 이어질 텐데……. 나는 집안의 장손이라서 그렇게까지는 꿈도 꿀 수 없지만, 매주 나갈 수만 있다면 꼭 나가고 싶다. 아무 것도 못 찍고 온대도 좋다. 사진기만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은 나도 거의 나간다. 아마 집안 일이 없다면, 1년 중의 휴일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날은 많아야 두세 번일 것이다. 매 번 나가면 120 롤 필름 두세 롤씩 찍어 오는데도 마음에 꼭 드는, 눈에 확 띄는 사진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나가는 즐거움, 찍는 기쁨, 설레는 기다림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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